지난달 28일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감광액이 누출됐다. 직원이 냉장시설에서 감광액 1리터짜리 유리병을 꺼내다 떨어뜨렸다. SK하이닉스는 누출된 감광액을 처리한 뒤 소방서에 사고 신고를 했다. 당시 사고 직원은 안전복을 입고 있었고, 부상 등 인명피해는 없었다. 사고 조치도 비교적 빨리 이뤄졌다.
감광액은 반도체를 만들때 원판 표면 위에 미세한 회로를 그리기 위해 빛을 이용하는 광학 공정에 사용되는 액체다. 감광액은 각종 합성수지와 감광성 선분, 화학 용매, 첨가제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반올림은 "병이 깨지지 않아도 감광제는 포토 공정에서 노동자들에게 두통과 어지럼증을 유발시킨다"며 "반도체와 백혈병 사망 관련 산업재해 판결에서도 감광제에서 백혈병 위험인자로 알려진 벤젠과 메톡시에탄올 등이 검출된 바 있다"고 밝혔다.
감광액의 유해성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볼때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가 문제일 뿐이다.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공인노무사는 "감광제에 벤젠이 검출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감광제에 열을 가하면 벤젠이 나온다는 사실은 노동부 산하 연수소 보고서에도 등장한다. 하이닉스가 사태를 축소하는 것은 노동자 건강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반면 하이닉스와 재계에선 사태 부풀리기라는 얘기가 나온다. 빠른 뒷처리가 이뤄졌고, 신속하게 신고도 됐다. 또 감광액은 불산이나 염소 등과 같은 유해물질이 아닌 인화성 위험물질이라는 주장이다.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관련 연구, 법적 논의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이 추가로 드러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산업현장에서의 크고 작은 사고를 다루는 기업의 자세다. 지난달 산업단지에서 각종 사고가 터졌다. 구미 LG실트론공장에선 불산과 질산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포항 포스코에선 폭발성 화재로 1명이 다쳤다. 전남 여수에선 대림산업 공장에서 큰 폭발사고가 일어나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다쳤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불산 누출사고 은폐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일이다.
하이닉스 감광액 누출 사고의 발 빠른 대처는 직전 염소 누출 건을 쉬쉬했던 후폭풍 학습효과 측면이 크다. 어찌보면 산업현장 사고를 다루는 기업의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또다른 기회였다. 문제의 근원 해결보다는 소란 극소화가 최우선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정책이 이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이종란 노무사는 "산업재해와 사고에 대한 기업의 마인드 제고와 더불어 산업현장 사고에 대한 정부의 메뉴얼 정비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유해물질 지정이 부처마다 다르고, 안전 점검을 책임지는 정부 단체가 분산돼 있어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유해물질 지정과 사고대처 메뉴얼이 없는 상태여서 신고 등 차후조치에 대한 규정도 유명무실하다.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안전과 환경문제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해괴한 논리다. 이런 문제제기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를 갉아 먹는다는 주장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기술 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행복지수, 지역사회의 공생(환경적인 측면 포함) 등을 포괄적으로 끌어안는다. 문제를 덮다가 나중에 곪아 터지면 오히려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전개된다.
최근 대기업의 중소기업 상생 선언과 사회공헌 활동 매진도 기술 등 물리적 경쟁력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건강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맞닿는다. [소비자인사이트/스포츠조선]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