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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에 봄날이 찾아왔다. 구름 인파가 몰린다.
프로스포츠의 존재 이유는 고객에 있다. 팬 없는 프로스포츠 종목은 오랜 가뭄 속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와 같다. 발전은 커녕 생존도 어렵다.
스포츠조선이 축구 인기 지속과 미래적 발전을 위한 제언을 준비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서두르지 않으면 모처럼 밀려온 축구 인기도 머지않아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축구 강국이란 미래를 위해 당장 팔을 걷어붙여야 할 시점이다. 실천이 먼저다. <편집자 주>
②축구만 본다? 축구장, 이제는 문화소비공간으로
③팬도 스타도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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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축구장에서 화장실 안 가요."
16일, 전남과 경남의 2018년 KEB하나은행 K리그1 28라운드 대결이 펼쳐진 순천팔마종합운동장. 경기장을 찾은 여중생 A양의 말이다. 친구들과 종종 축구장을 찾는다는 A양은 웬만해서는 운동장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화장실에 늘어선 긴 줄 때문이다. 그는 "자칫 후반전이 시작 시간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1일 대한민국과 칠레의 친선경기 당시 여성 화장실 앞에는 두 줄이 겹쳐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유독 부족한 여성 시설
축구장을 찾는 이유, 당연히 축구 관람이다. 그러나 아무리 재미난 경기라도 몸이 불편하면 집중이 어렵다. 편리한 시설이 '팬 퍼스트'의 첫 걸음인 이유다. 그러나 경기장에는 유독 여성 시설이 부족하다.
화장실이 대표적인 예다. 허점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축구장의 남녀 화장실 비율 및 면적은 같다. 여성 화장실이 좁다고 투덜댈 수 없다. 그러나 남녀화장실을 같은 면적으로 나눌 경우 여성용 변기의 면적이 남성용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남성화장실의 경우 여성화장실보다 20% 이상 더 많은 변기를 설치할 수 있다. 게다가 여성의 화장실 소비 시간이 남성보다 1.5배 더 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여성 화장실 앞에 긴 줄이 늘어선 이유다. 구단 관계자 B씨는 "경기장을 지을 때 남녀 화장실 비율을 똑같이 잡았다. 아무래도 주된 팬은 남성이기에 여성 시설에 대한 고민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단 화장실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유 수유실도 없다. K리그1 12개 구단 가운데 5개(서울, 인천, 포항, 제주, 전북) 구장만 갖추고 있다. 여성들이 화장실만큼이나 빈번하게 활용하는 파우더룸도 없다. 전북(수유실 겸용), 제주, 인천만이 시설을 갖췄다.
C구단 관계자는 "백화점, 영화관 등에는 화장실 뿐 아니라 파우더룸과 모유수유실도 갖춰져 있다. 여성 고객이 많아져서 편의시설이 생긴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인프라'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만든 것이다. 축구장은 아직 인프라의 기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성팬 D씨는 "단순히 남녀라는 성별 구분을 떠나 누구나 경기장을 편하게 이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아들의 기저귀를 갈기 위해 화장실에 갔는데 갈이대 및 비누 등 기본 용품이 구비돼 있지 않았다.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축구장에 먹거리가 없다?
편의점, 분식점, 카페…. 야구팬 사이에서는 '구장 맛집 투어'가 인기다. 그만큼 경기장 내 먹거리가 풍부하다. 하지만 축구장은 얘기가 다르다. 매점 혹은 편의점 입점이 전부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수익이다. K리그는 총 38경기로 치러진다. 이 가운데 홈경기는 19~20차례. 업주 입장에서는 365일 중 단 20여일 장사를 위해 고정비용을 선뜻 투자할 수는 없다. E구단 관계자는 "실외스포츠인 만큼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4~5차례는 비가 온다. 경기장을 찾는 팬이 확 줄어든다. 수익 감소로 직결된다. 축구장 내 음식점이 자생할 수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그나마 외부 시설과 가깝게 붙어 있는 구장은 사정이 낫다. 서울, 인천, 대구, 제주 등은 경기장과 대형마트가 인접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장은 외부 시설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만큼 선택의 폭도 좁아진다.
유연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구단은 팬을 위해 푸드트럭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경기장 밖에 설치돼 있어 불편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한다. 축구전문가 F씨는 "팬들이 축구를 보면서 다양한 먹거리도 즐길 수 있도록 외부 시설을 경기장 안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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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개선 방법이다. 지자체 소유인 인프라를 손대는 게 여러모로 쉽지 않다. 사소한 거 하나 고치는데도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구조 변경 등은 말 할 것도 없다. 한국축구 발전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대승적 차원의 협조가 동반돼야 하는 이유다. 지차체 입장에서는 차일피일 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축구장 인프라 개선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해당 시민의 건강한 여가선용을 위한 의무적 서비스의 일환이다. 특히 여성과 모성을 위한 인프라 개선은 모성보호라는 국가적 과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G구단 관계자는 "프로야구 SK 홈구장인 문학야구장에는 각종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인천과의 협업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그나마 고무적인 사실은 구단과 지자체 모두 시설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는 신축 중인 축구전용구장에 수유실 등을 구비할 예정이다. 대구 구단 관계자는 "여성 팬께서 수유실을 찾은 적이 있다. 우리 구장에는 수유실이 없어서 사무실을 내어 드린 적이 있다. 최근 여성 팬이 많이 늘었는데, 시설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전용구장을 지을 때 여성 팬을 위한 몇몇 편의 시설을 포함시켰다"고 전했다. 포항 역시 몇 년 전 개·보수를 통해 수유실을 만들었다.
팬들이 다시 찾고 싶은 축구장. 이를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고객 불편을 줄이려는 구단과 지자체의 섬세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