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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인맥 논란 등 굴곡을 딛고 2연패 달성한 '명장' 김학범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9-01 23:03



1일 오후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렸다. 한국 김학범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보고르(인도네시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8.09.01/

김학범 감독은 철저한 비주류였다.

그는 선수시절 무명이었다. 태극마크는 고사하고 프로무대도 못밟아봤다.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은퇴한 뒤 은행원으로 일했다. 워낙 성실했던 그는 과장까지 진급했다. 하지만 축구를 놓지 못했다. 김 감독은 지도자로 다시 축구의 길을 걸었다. 특유의 성실함에 영리함을 더한 김 감독은 지도자 변신 후 승승장구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코치를 맡으며 이름을 알린 김 감독은 1998년 성남의 코치로 합류하며 지도자로서 기반을 닦았다. 2001~2003년 성남의 3연패에 결정적 공을 세웠던 김 감독은 2005년 꿈에 그리던 프로 감독이 됐다. 이듬 해 성남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대표적인 지략가로 인정받았다. 2006년 K리그 최우수 감독으로 뽑히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이름을 빗대 '학범슨'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김 감독의 힘은 공부였다. 2006년 명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국내 첫 축구박사가 됐다. 김 감독은 틈만 나면 자비로 남미와 유럽을 방문해 수준 높은 리그를 보며 전술을 익힌다. K리그에서 가장 먼저 포백 전술을 도입한 것도 김 감독이었다. 성남, 강원, 광주 등 지원이 부족한 시도민구단을 맡았지만, 특유의 지략을 앞세워 늘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부단히 공부하며 실력으로 살아남았지만, 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주류라는 유리천장이 그를 가로 막았다. 기회가 찾아왔다. 김봉길 감독의 경질로 U-23 대표팀 감독직이 공석이 됐다. 김판곤 국가대표선임위원장은 다양한 후보군을 올리고 면접을 진행했다. 김 감독은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최종면접에서 대회 참가 24개국의 전력을 분석한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침내 김 감독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팬들은 김 감독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허니문은 길지 않았다. 와일드카드 발탁 과정에서 황의조(감바오사카)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황의조가 과거 성남 시절 김 감독의 제자였다는 이유로 '인맥축구' 논란이 따라붙었다. 김 감독은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황의조를 그대로 발탁했다. 김 감독은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설명해 팬들을 납득시키고자 했다. 해외파 공격수들의 합류시점이 불분명하다는 전략적 이유는 물론, 포메이션에 베스트11까지 공개할 정도였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이 7일 오후 파주스타디움에서 인천대와 연습게임을 했다. 하프타임 때 김학범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파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8.07/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불만은 진화되지 않았다. 일부 정치인까지 가세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본격적인 출항도 하기 전에 여론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흔들렸다. 설상가상으로 조편성까지 도와주지 않았다. 주최측의 실수로 두번이나 조편성이 다시 되는 촌극을 빚었다. 다행히 원안대로 대회가 진행되기로 했지만, 스케줄이 꼬였다. 연습경기 조차 치르지 못한 채 대회에 나서야 했다.

첫 경기였던 바레인전에서 6대0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이내 위기가 찾아왔다. 말레이시아와의 2차전에서 1대2로 패했다. 1차전과 비교해 6명이나 선수를 교체한 탓이었다. 그렇다치더라도 너무 형편없는 경기력이었다. '반둥 참사'로 불리며 다시 한번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김 감독은 "내 판단 미스"라며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선수들을 감싸며 하나로 뭉치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 패배는 약이 됐다. 한국은 이후 확 달라진 경기력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중심에는 단연 와일드카드가 있었다. '캡틴' 손흥민(토트넘)은 주연이 아닌 조연을 자처했다. 슛 보다는 패스로 팀을 이끌었다. 필요하면 수비까지 가담했다. 경기장 밖에서는 선수들을 이끌며 리더십을 과시했다. 조현우(대구)는 출전한 경기마다 선방을 펼쳤다. 불안한 수비의 버팀목이 됐다. 황의조는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매경기 엄청난 득점포를 쏘아올린 그는 이번 대회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인맥논란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김 감독의 지략도 돋보였다. 플랜A였던 스리백이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자, 과감히 4-3-3으로 전환했다. 공수 모두를 잡았다. 특히 한국이 자랑하는 막강 공격진의 화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4대3)에서 극적인 승리로 눈물을 흘린 김 감독은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부담스러운 베트남과의 4강전에서는 '닥공'이라는 깜짝카드로 완승을 거뒀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에서 맞이한 한일전. 지면 그간의 성과를 모두 날릴 수 있는 부담스러운 일전이었지만 황희찬 선발, 이승우 조커 카드로 극일에 성공했다.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아시안게임 2연패를 이뤘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도전하는 김 감독은 이번 대회를 중간 평가의 무대로 삼겠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다. '금메달' 아니면 실패인 무대다. 지도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대회다. 김 감독은 언제나 그랬듯 실력으로 그 벽을 넘었다. 흙길만을 걸었던 '비주류' 김학범의 축구인생에 마침내 꽃이 피는 순간이었다.


보고르(인도네시아)=선수민 기자 sunso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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