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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감독은 철저한 비주류였다.
김 감독의 힘은 공부였다. 2006년 명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국내 첫 축구박사가 됐다. 김 감독은 틈만 나면 자비로 남미와 유럽을 방문해 수준 높은 리그를 보며 전술을 익힌다. K리그에서 가장 먼저 포백 전술을 도입한 것도 김 감독이었다. 성남, 강원, 광주 등 지원이 부족한 시도민구단을 맡았지만, 특유의 지략을 앞세워 늘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부단히 공부하며 실력으로 살아남았지만, 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주류라는 유리천장이 그를 가로 막았다. 기회가 찾아왔다. 김봉길 감독의 경질로 U-23 대표팀 감독직이 공석이 됐다. 김판곤 국가대표선임위원장은 다양한 후보군을 올리고 면접을 진행했다. 김 감독은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최종면접에서 대회 참가 24개국의 전력을 분석한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침내 김 감독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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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기였던 바레인전에서 6대0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이내 위기가 찾아왔다. 말레이시아와의 2차전에서 1대2로 패했다. 1차전과 비교해 6명이나 선수를 교체한 탓이었다. 그렇다치더라도 너무 형편없는 경기력이었다. '반둥 참사'로 불리며 다시 한번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김 감독은 "내 판단 미스"라며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선수들을 감싸며 하나로 뭉치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 패배는 약이 됐다. 한국은 이후 확 달라진 경기력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중심에는 단연 와일드카드가 있었다. '캡틴' 손흥민(토트넘)은 주연이 아닌 조연을 자처했다. 슛 보다는 패스로 팀을 이끌었다. 필요하면 수비까지 가담했다. 경기장 밖에서는 선수들을 이끌며 리더십을 과시했다. 조현우(대구)는 출전한 경기마다 선방을 펼쳤다. 불안한 수비의 버팀목이 됐다. 황의조는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매경기 엄청난 득점포를 쏘아올린 그는 이번 대회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인맥논란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김 감독의 지략도 돋보였다. 플랜A였던 스리백이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자, 과감히 4-3-3으로 전환했다. 공수 모두를 잡았다. 특히 한국이 자랑하는 막강 공격진의 화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4대3)에서 극적인 승리로 눈물을 흘린 김 감독은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부담스러운 베트남과의 4강전에서는 '닥공'이라는 깜짝카드로 완승을 거뒀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에서 맞이한 한일전. 지면 그간의 성과를 모두 날릴 수 있는 부담스러운 일전이었지만 황희찬 선발, 이승우 조커 카드로 극일에 성공했다.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아시안게임 2연패를 이뤘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도전하는 김 감독은 이번 대회를 중간 평가의 무대로 삼겠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다. '금메달' 아니면 실패인 무대다. 지도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대회다. 김 감독은 언제나 그랬듯 실력으로 그 벽을 넘었다. 흙길만을 걸었던 '비주류' 김학범의 축구인생에 마침내 꽃이 피는 순간이었다.
보고르(인도네시아)=선수민 기자 sunso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