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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스웨덴의 스웨덴식 짠물축구 '이거 장난아니네'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8-07-05 05:20


ⓒAFPBBNews = News1



'재미가 덜하면 어때? 이기면 되지.'

국내 K리그에서는 '수비축구'가 자주 도마에 오른다. 수비에 치중하느라 박진감이 떨어지는 등 경기 내용이 재미없어진다며 팬들의 비난을 사기 십상이다.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결과를 가져오는 게 중요한 감독-팀 입장에서는 수비축구도 이기기 위한 전술이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여론을 의식해 대놓고 수비축구를 하는데 주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기전 월드컵에서는 다르다. 조별리그에서 1패는 탈락의 지름길이고, 16강 이후 토너먼트에서는 패배는 죽음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승리하는데 초점을 둬야 한다.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세계 축구팬들의 빈축을 샀던 일본처럼 노골적으로 '공 돌리고 시간끌기' 정도만 아니라면 다소 재미는 잃더라도 이기는 게 '갑'이다.

결국 축구에서 '재미'와 '승리'는 공존하면 금상첨화지만 상황에 따라 좀처럼 함께 가기 힘든 단어인 셈이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 공존하기 힘든 두 단어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팀이 있다.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실속 만점 수비축구가 새삼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은 스위스와의 16강전에서 1대0으로 승리하며 1994년 4강 진출 이후 24년 만에 8강의 꿈을 이뤄냈다.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라 거침없는 질주를 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위 스위스가 24위 스웨덴에게 패할 것이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스위스는 스웨덴과 플레이 특성이 비슷하지만 더 공격적이다. 간판 스타 샤키리를 앞세워 조별리그에서 경기당 1.7골(총 5골)을 넣은 만만치 않은 화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스웨덴의 만리장성 수비벽 앞에서는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스웨덴은 전반 역습에서 좋은 찬스에서 베리가 '헛발질'을 하는 등 공격 결정력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탄탄한 수비 덕분에 포르스베리의 '한방'을 앞세워 결과를 가져갔다.


ⓒAFPBBNews = News1


스웨덴은 다양한 변화를 구사하지도 않는다. 스위스와의 16강전에서도 변함없는 4-4-2 포메이션에 중앙 미드필더 라그손 대신 스벤손이, 중앙 수비에 얀손 대신 린데로프가 선발로 나온 것을 제외하고 한국과의 조별리그 1차전과 똑같았다. 조별리그부터 16강까지 4-4-2만 고집하고 있는 스웨덴은 아우구스틴손-그란크비스트-얀손(린데로프)-루스티그의 포백 라인도 매번 고정적이다.

그만큼 스웨덴은 특출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는 대신 베스트 멤버의 조직력은 흔들림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군계일학'에 의존하기보다 골고루 힘을 합쳐 전체적인 전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스웨덴은 고정된 포메이션에 그 위치에서 어떤 선수가 어떻게 뛸지 예상 가능한 전술을 사용한다. 하지만 스위스는 이 사실을 뻔히 알고 준비했을텐데 스웨덴을 쉽게 흔들지 못했다"면서 "이는 스웨덴 선수들이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플레이가 무엇인지 알고 집중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스웨덴은 F조에서 한국이 1승의 제물로 노렸던 상대였다. 독일, 멕시코에 비해 수월하다고 여겼던 게 사실이다. 한국이 조별리그 첫경기에서 통한의 페널티킥으로 0대1 석패했을 때 스웨덴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던 이가 많았다. 하지만 스웨덴은 예상을 깨고 조 1위로 16강에 올랐고 스위스마저 무실점으로 잠재워 버렸다. 그 배경에 짠물 수비력이 있음은 기록에서도 잘 나타난다.

스웨덴은 조별리그에서 F조 가장 적은 2실점을 했다. 16강 진출국 가운데 우루과이(0실점), 프랑스, 크로아티아, 브라질(이상 1실점) 등에 이어 6번째로 중간 정도였다. 그러나 16강 8경기가 모두 끝난 4일 현재 브라질과 함께 유이하게 무실점 수비력을 보였다. 16강까지 포함하면 브라질, 우루과이에 이어 전체 3번째로 실점이 적은 팀이 됐다.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9실점), 스페인, 포르투갈(이상 6실점), 독일(4실점)이 뒷문 단속에 실패해 줄줄이 낙마한 사실에 비춰보면 스웨덴으로서는 의미있는 기록이다.

스위스-스웨덴의 16강전을 중계하던 이영표 해설위원이 "스웨덴이 수비로 전환할 때 흔들림 없이 재빠르게 전열을 갖추는 모습이 대단하다"며 감탄할 정도였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가 아니라 '이잘싸(이겨야 잘 싸운 것)'를 고집하는 스웨덴이 '공격축구'의 대가 잉글랜드 앞에서도 통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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