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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보다 끝이 좋았다."
소감을 전하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충분히 오래했다. 내가 가진 이상으로 했다. 선수로 아쉬운 부분은 없었다"며 "부모님이 나를 뒷바라지 하시느라 본인의 삶을 희생하셨다. 아내 역시 올때까지 울겠어 했는데 막상 울울더라. 그 동안 나따라 다니느라 희생했다. 감사한 마음에 울컥했다"고 했다.
현영민은 지난 시즌 종료 후 재계약 하지 않기로 한 구단의 의사를 받아들여 은퇴를 선언했다. 광희초 5학년 때 처음으로 축구화를 신은 현영민은 2002년 울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구름 위를 걸었다. 강철 체력과 강력한 스로인 능력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을 사로잡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이후 2005년 울산을 K리그에서 우승시킨 현영민은 이듬해 1월 해외무대도 밟았다. 러시아 명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6개월간 뛰다 그 해 여름 다시 울산으로 복귀했다. 2010년 FC서울로 둥지를 옮기자마자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춘 현영민은 2013년 성남을 거쳐 2014년부터 전남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특유의 성실함은 기록으로 증명됐다. 지난해 9월 K리그 400경기 출전이란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올 시즌까지 37경기를 더 뛰며 개인통산 437경기, 9골-55도움을 기록했다. 왼쪽 풀백 최다 공격 포인트는 신홍기(336경기77개) 전 전북 현대 코치에게 뒤졌지만 출전 수는 포지션 플레이어 중 최다다. "내 포지션에서 기록을 남기자"라고 한 다짐을 결국 지켜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성공한 선수 인생'이라고 당당히 아로새길 수 있게 됐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현영민은 지도자로의 변신을 모색할 예정이다. 당초 전남은 현영민에게 이번 시즌이 끝난 뒤 유스팀 지도자 기회를 주려 했었다. 아쉽게 팀 성적이 좋지 않으면서 계획이 무산됐지만 지도자로서 현영민이 그려갈 '제2의 인생'은 이제 막 테이프를 끊었다. 일단 그 전에 앞서 해설가로 변신한다. 그는 "K리그 소식을 재밌게 전해드리려고 해설 준비하고 있다"며 "재밌게 하고 싶다. 선수들 관점에서, 심판, 지도자 관점에서 해설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지도자에 대한 꿈은 계속된다. 그는 지도자에 대한 확고한 생각으로 발 빠르게 지도자 B급 자격증을 땄다. 이젠 A급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언젠가 찾아올 K리그 사령탑에 대한 대비도 해놓았다. 외국인 선수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영어 과외와 공부를 하고 있다. 또 고교 시절부터 시작한 여러 지도자들의 성향, 지도방식, 철학 등 모든 것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도 지녔다. 더불어 최근에는 심판 강습회까지 참여해 심판 시스템과 심리까지 공부했다. 현형민은 "메모의 마지막은 어떤 지도자가 될지에 대한 부분"이었다며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여기에 디테일한 부분도 만들어가고 싶다"고 전했다.
광양=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