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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남북 단일팀' 구상이 불거질 때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종목이다.
그렇다면 27년 전인 1991년 축구 남북 단일팀은 어땠을까. 정치권의 '제4차 남북체육회담'이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과정은 사뭇 달랐다. 남북 축구협회가 4개월 간의 준비 기간을 가졌다. 23명의 선수 선발은 균등하게 배분됐으나 '기회 박탈' 논란은 없었다. U-20 월드컵 예선 격이었던 아시아선수권 결승 맞대결로 남북은 나란히 2장의 본선 출전권을 확보했다.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접전을 펼쳤을 만큼 두 팀의 실력도 대동소이했다. 단일팀 결성으로 1장의 출전권이 차 순위팀(시리아)에게 돌아가면서 FIFA가 어깃장을 놓을 이유도 사라졌다. 결국 남북 단일팀은 8강 진출이란 성과 속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됐다.
만약 신태용호가 출전하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여자 아이스하키처럼 정부 주도로 '단일팀' 논의가 불거졌다면 어땠을까. 27년 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본선 출전권을 확보한 남과 달리 북은 2차예선에서 일찌감치 짐을 쌌다. '일부 북한 선수를 한국 대표팀에 합류시킨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본선 탈락국들이 FIFA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설 것이 불보듯 뻔하다.
징계 후폭풍은 컸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에서 슈틸리케호와 조 1위 자리를 경쟁하던 쿠웨이트는 FIFA로부터 철퇴를 맞은 뒤 '몰수패'를 당하면서 탈락했다. 3개국 협회는 A매치 뿐만 아니라 프로팀들의 국제대회 출전까지 막히면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무대에 한동안 서지 못했다.
과정과 절차가 생략된 명분은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통한 결론도출이 중요한 이유다. 27년 전 축구 남북 단일팀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