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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2002년 한-일월드컵 멤버였던 현영민(38)이 16년간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광희초 5학년 때 처음으로 축구화를 신은 현영민은 2002년 울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구름 위를 걸었다. 강철 체력과 강력한 스로인 능력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을 사로잡아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이후 2005년 울산을 K리그에서 우승시킨 현영민은 이듬해 1월 해외무대도 밟았다. 러시아 명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6개월간 뛰다 그 해 여름 다시 울산으로 복귀했다. 2010년 FC서울로 둥지를 옮기자마자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춘 현영민은 2013년 성남을 거쳐 2014년부터 전남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이 야속했지만 사실 이 때부터 '마지막'은 항상 준비하고 있었다. "생갭다 오랜 시간 선수생활을 했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 내 욕심만 챙기는 건 후배들에게 못할 일"이라고 말하던 그였다. 그래도 매년 1년씩 재계약하면서도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기상시간부터 사소한 것까지 철저하게 스케줄을 관리했고 매일 한 시간 이상 개인운동을 습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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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현영민은 지도자로 변신할 전망이다. 전남은 현영민에게 이번 시즌이 끝난 뒤 유스팀에서 지도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계획을 했었다. 아쉽게 팀 성적이 좋지 않으면서 계획이 무산됐지만 현영민의 '제2의 인생'은 이제 테이프를 끊었다.
준비는 남부럽지 않게 했다. 지도자에 대한 확고한 생각 때문에 현영민은 발 빠르게 지도자 B급 자격증을 땄다. 이젠 A급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언젠가 찾아올 K리그 사령탑에 대한 대비도 해놓았다. 외국인 선수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영어 과외와 공부를 하고 있다. 또 고교 시절부터 시작한 여러 지도자들의 성향, 지도방식, 철학 등 모든 것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도 지녔다. 더불어 최근에는 심판 강습회까지 참여해 심판 시스템과 심리를 공부해 지도자가 된 뒤 적용하려는 노력까지 보였다.
'선수'라는 타이틀을 놓게 되는 현영민의 마지막 바람은 한 가지다. 가족들 앞에서 제대로 된 은퇴식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전남 레전드는 아니지만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가족, 팬들과 함께 웃으며 인사하고 떠나고 싶어한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