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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경의 J사커]할릴재팬의 동아시안컵과 일본 축구의 한계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7-12-18 17:02



일본 축구계의 분노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한-일전 1대4 참패 뒤 성토 일색이다. 한-일전 패배 뒤 "한국은 모든 면에서 일본보다 우위였다. 오늘의 한국은 이길 수가 없었다"고 패배를 인정한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의 '경질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은 "차원이 다른 수준의 한심한 경기였다. (선수들이) 과연 일본 대표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가"라고 일갈했다. 일본 언론 및 칼럼니스트들도 연일 '할릴호지치 감독을 경질하라'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회 시작 전까지만 해도 할릴호지치 감독을 둘러싼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나선 우라와 소속 선수 및 기요타케 히로시, 스기모토 겐유(이상 세레소 오사카)의 부상으로 전력이 100%가 아님을 인정하는 듯 했다. 동아시안컵에서 만날 한국, 중국, 북한과의 경기 결과보다는 할릴호지치 감독이 팀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대회 개막 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일본 취재진을 향해 농담을 거는 등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기자회견장을 찾은 일본 취재진 일부도 할릴호지치 감독의 어투를 따라하며 장난을 칠 정도로 진지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안에는 대회에 참가한 3개국, 한국과 중국, 북한보다는 한 수 위라는 자신감이 은연중 깔려 있었다. 중국전 승리 뒤 한-일전에 대한 일본 언론의 질문이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은 점이 이같은 사실을 방증한다.


현장에서 열흘 간 지켜본 일본 대표팀의 분위기는 달랐다. '근성의 실종'이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이번 대회를 국내파 최종 테스트 무대로 잡았으나 정작 이 기회를 잡고자 하는 일본 선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선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여유로웠지만 겉돌고 있었다. '우승'과 '승리'라는 결과물을 이구동성으로 외쳤지만 정작 훈련이나 경기에서 이를 쟁취하고자 투쟁심을 보여주는 선수들은 없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중국전에서 승리한 뒤 이런 분위기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말을 남겼다. "1차전(북한전) 때는 선수들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중국전을 앞두고 미팅했을 때)'여러분들은 능력이 있어 대표팀에 뽑힌 것이다. 실력을 발휘해라. 여러분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우리(대표팀)의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한 주문일수도 있지만, 경쟁의 마지막 시험무대에 놓인 선수들이 굳이 감독으로부터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을 들어야 할 정도로 '근성'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의문부호를 남긴다.


최근 수 년간 일본 대표팀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파가 중심이었다. 국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도 더러 있었지만 선발 라인업에는 유럽 리그 기반의 선수들 뿐이었다. 최근 일본은 오카자키 신지, 가가와 신지, 혼다 게이스케, 하세베 마코토, 나가토모 유토 등 그동안 주력으로 뛰었던 선수들이 30대에 접어들면서 세대교체를 시작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해외파 일변도'의 대표팀 흐름은 J리거들의 경쟁 의지를 꺾어놓은 듯 했다. '순종적인' 일본 선수 특유의 스타일도 이런 경향을 부채질하는 모습이다. 할릴호지치 감독이 취임 이래 듀얼(Duel·부딪쳐 싸움)을 강조해 온 것은 이런 분위기를 깨겠다는 의도였지만 이번 대회를 돌아보면 '듀얼 의식'을 보여준 일본 선수는 없었다. 선수 테스트 외엔 애매함으로 일관한 할릴호지치 감독의 능력도 문제였지만, 싸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팀 의식이 가장 큰 문제였다. 대회 기간 내내 상대국을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일본의 느슨한 분위기와 플레이도 결국 한-일전의 역사적인 대패라는 혹독한 결과물로 돌아왔다.


일본이 장점으로 내세웠던 '창의력'도 빛이 바랜 느낌이다. 북한, 중국, 한국을 차례로 상대한 3경기 모두 일본의 패스 능력은 출중했다. 1대4로 패했던 한국전에서도 순간 번뜩이는 패스를 수 차례 보여줬다. 하지만 '패스 이상의 전개'를 해줄 만한 선수들은 없었다. 한국에게 잇달아 3골을 얻어맞은 뒤에도 일본이 보여준 플레이는 패스에 국한됐다. 할릴호지치 감독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면 스스로 흐름을 바꿨어야 하지만 '모험'을 하는 선수는 없었다. 혼다 게이스케가 "4실점은 지금의 일본 축구를 상징하는 모습"이라는 말을 곱씹어볼 만하다.

이번 한-일전 결과가 일본 축구의 전부라고 보긴 어렵다. 유럽 무대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받고 있는 선수들이나 J리그의 시스템 모두 아시아 정상급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틀을 깨지 못하는 일본 축구의 모습은 여전했다. 일본 축구의 '탈아입구(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을 지향한다)'는 요원해 보인다.


스포츠2팀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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