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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헌신의 아이콘' 오반석 "그림자 없이 빛나는 건 없다"

임정택 기자

기사입력 2017-11-16 12:02



"그림자 없이 빛나는 건 없습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눈도 깜빡이지 않는다. 수비수 포지션을 대하는 오반석(29·제주)의 마음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언제나 화려한 조명 뒤의 그림자 같은 존재. 아홉 번 잘 해도 한 번 놓치면 손가락질 받는 위치. 그게 수비수다. 이 '극한 직업'을 오반석은 사랑한다.

"그림자 없이 빛나는 건 없습니다." 오반석은 이런 사람이다. 팀을 빛내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는, 또 그 상황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오반석의 삶은 헌신의 연속이었다.


제주는 올 시즌 2위를 확정, 다음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티켓을 손에 넣었다. 원동력은 탄탄한 수비였다. 리그 최종전인 38라운드를 앞둔 지금, 제주는 34실점에 불과하다. 리그 27경기를 치르는 동안 무려 15경기를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오반석은 그 '철벽' 중심에 서있다. 무실점 15경기 중 오반석으로 선발로 나선 게 13경기다.

본인도 놀랐다. "정말 그렇게 기록이 좋았나?" 슬쩍 미소 지은 오반석은 "수비수는 활약을 가늠하는 척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무실점 경기에 대한 욕심이 크다.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면 정말 기분이 좋다. 최소한 팀이 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했다.

말수 적은 오반석의 말이 빨라진다. 수비 이야기를 꺼내서 그렇다. 역시 천생 수비수다. 성격도 그렇다. 언제나 신중하고 진지하다. 오반석의 사전에 '돌발 행위'란 없다. 심지어 오락게임을 할 때도 그는 수비수를 택한다. "태생적으로 성격 자체가 수비수 같다. 다른 걸 해도 수비적인 것을 좋아한다."


주목받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축구 선수로 한 번 사는 인생. 오반석이 눈을 감고 폼나고 멋진 '주인공의 삶'을 잠시 그려본다. 슬쩍 입고리가 올라가는 듯 하더니 다시 눈을 떴다. "아무래도 난 역시 수비수다."

다시 태어나도 오반석은 뒤에 서겠다고 한다. 그는 "나는 딱 수비 체질이다. 타고난 기질 자체가 그런 것 같다. 고민의 여지가 없다. 난 다시 태어나더라도 수비수로 뛸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수비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이번 시즌도 그랬다. 오른발잡이지만 직접 요청해서 스리백 왼쪽 축에 섰다. 오반석은 "나도 팀도 강점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왼쪽을 원했다. 제주가 패스를 많이 돌리는 스타일이기에 왼발까지 쓰면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며 "훈련 때마다 의식적으로 왼발을 쓰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많이 적응됐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가 제주에 몸 담은 지도 벌써 6년이 됐다. 2012년 제주에 입단한 이후 줄곧 제주에서 뛰었다. 그 시간 동안 팀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바람이 많은 국토 최남단의 섬, 제주. 그 척박함 때문일까. 제주는 팀의 주축급 선수들을 오래 붙잡아 둔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숱한 선수들이 제주에서 '주목'받은 뒤 육지로 또 해외로 떠났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오반석이다. 말 없이 묵묵히 6년이란 시간 동안 제일 뒤에 서있었다. 가장 아래 있는 팀 제주에서도 가장 뒤에 있는 선수, 오반석. 그는 희생과 헌신으로 제주를 지켜왔다.


답답할 때면 제주 한라산 꼭대기에 오르곤 하지만, 선수로서 정상에 서본 적이 없다. 최강의 팀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만 살았지 최고의 선수는 꿈도 꿔본 적 없다. 축구화를 신은 지 십수년이 지난 지금, 오반석의 훈장은 2006년 금강대기 전국 중고교 축구대회 수비상이 전부다. 그런 오반석이 2017년 K리그 클래식 베스트11 수비수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만약 수상한다면 프로 데뷔 후 첫 개인 타이틀이다.


오반석은 "어릴 때부터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다. 최고가 아니라 항상 최고를 따라가는 위치였다. 그래서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했다"며 "제주에서는 최고가 아니더라도 팀과 동료와 함께 최강이 되는 게 목표다. 그리고 올해 그 노력들이 인정받으면 더욱 기쁠 것 같다"고 나직하게 말했다. 이어 "이번 후보에 오른 것 역시 내가 아닌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이룬 성과"라며 "제주라는 이름을 더 드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한 동기 부여를 받는다. 제주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 타이틀에 대해 물어봐도 오반석의 결론은 또 제주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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