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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가 2년만에 K리그 클래식 우승컵을 탈환했다.
공교롭게도 2014년, 2015년 리그 2연패를 이룬 전북이 우승을 확정지은 경기는 모두 제주 원정이었다. 2014년 11월8일 스플릿2라운드에서 제주를 3대0으로 꺾고 우승했고, 2015년 11월8일 스플릿 3라운드에서 제주를 1대0으로 꺾고 2연패를 달성했다. 얄궂게도 2017년 '매직넘버1'만을 남겨둔 전북이 또다시 제주를 마주했다. 조성환 제주 감독은 "삼세번은 안된다"며 우승 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안방에서 우승을 조기확정 짓겠다는 '닥공' 전북과 우승 들러리 삼세번은 안된다는 제주의 불꽃 투혼이 뜨겁게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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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상대로 3골을 터뜨린 김신욱과 몸놀림이 가벼운 로페즈를 최전방에 내세웠다. 포백을 주로 써온 전북이 제주의 역습을 막기 위해 임종은-최보경-최철순의 스리백을 내세웠다. 제주 역시 리그 최강의 스리백 오반석-조용형-김원일이 강한 압박을 전개했다. 전북을 상대로 강했던 '젊은피 삼각편대' 이은범, 진성욱, 이창민을 최전방에 내세웠다. 전북을 상대로 전반 4분 이재성의 킬패스를 이어받은 로페즈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넘겼다. 전반 20분 역습찬스에서 상대 박스까지 치고 달린 로페즈의 슈팅이 골대를 벗어났다. 전반 20분 이후 양팀의 경기는 뜨거워졌다. 전반 28분 신형민의 중거리 슈팅은 매서웠다. 전반 29분 문전 쇄도하는 진성욱을 최철순이 막아섰다. 전반 30분 제주는 부상한 이은범 대신 마그노를 조기투입했다. 전반 41분 로페즈가 박스안으로 쇄도하자 제주 윙백 정운이 끝까지 막아냈다. 빠른 템포의 공수 전환, 창과 방패, 일진일퇴의 뜨거운 경기가 이어졌다. 전반 43분 오반석과 이재성이 충돌하며 옐로카드를 꺼냈다. 진성욱의 문전쇄도가 불발되며 전반을 0-0으로 마쳤다. 전북은 5개의 슈팅을 쏘아올렸지만 단 하나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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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시작과 함께 전북의 '닥공'이 시작됐다. 후반 1분, 김신욱이 박스안에서 머리로 떨궈준 볼을 이재성이 왼발 발리슈팅으로 마무리하며 골망을 흔들었다. 전주성이 '오오렐레~'함성으로 가득 찼다. 직전 강원전에서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한 이재성이 전북의 우승을 결정했다. 후반 14분, '윙백' 박진포가 옐로카드 2장을 받아들고 퇴장 당하며 수적 열세에 몰렸다.
후반 20분, '200호골'에 도전하는 이동국이 한교원 대신 들어섰다. 이동국이 투입되기가 무섭게 전북의 추가골이 터졌다. 후반 21분 전진패스를 이어받은 이승기가 지체없이 골을 터뜨렸다. 오프사이드 위치에 서 있던 김신욱의 영민함이 빛났다. 오프사이드에 위치한 선수가 적극 관여하지 않으면 플레이는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는 룰에 따라 이승기는 맘껏 전진했다. 사실상의 도움이었다. 최강희 감독이 김신욱의 등을 두드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반 29분 이승기의 야심찬 슈팅이 골대를 살짝 벗어났다.
조성환 제주 감독은 후반 30분 류승우를 투입하며 마지막 교체카드를 썼다. 전북은 김신욱을 빼고 에두를 투입했다. 후반 33분, 마침내 역사가 씌어졌다. 이동국이 로페즈의 크로스를 날선 헤더로 받아넣으며 전인미답의 200호골을 완성했다. 전북의 우승과 200호골, 최강희 감독와 이동국의 간절한 소망이 이뤄졌다. 결국 전북이 시즌 내내 고전했던 제주에게 3대0으로 완승하며, 승점차를 7점으로 벌렸다. 울산, 수원전 2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제주로서는 쓰라린 패배였다. 30라운드 최강희 감독에게 200승을 헌납한 데 이어 이날 전북의 5번째 우승, 이동국에게 200호골 기록 을 헌납했다.
시련속에 꽃피운 1강 전북의 5번째 우승 의미
전북은 2년만에 우승컵을 되찾았다. 2005년 최강희 감독이 전북 지휘봉을 잡은 이후 2009년 첫우승, 2011년, 2014년, 2015년 우승에 이어 5번째 별을 달았다. 지난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이어 4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티켓과 함께 11번째 최다 진출 기록도 세웠다. 2005년 전북 현대 지휘봉을 잡은 최강희 감독은 총 5회 우승으로 자신이 보유한 '역대 K리그 최다 우승 감독' 기록을 경신했다.
전북의 올시즌은 유난히 다사다난했다. 지난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다잡은 우승을 놓쳤다. 레오나르도 등 주축 선수의 이탈 속에 시즌 초반 이승기, 이재성 등 측면 공격수들의 줄부상으로 고전했다. 센터백 김민재가 윙어로 나서는 진귀한 장면도 연출됐다. 4월30일 광주(0대1패), 5월3일 제주(0대4)에 첫 2연패하며 흔들리기도 했다. 후반기엔 김진수, 이용 등 측면 수비수들이 쓰러지며 공격수 한교원이 윙백으로 내려서는 진풍경이 나왔다. 정규리그 선두를 질주해야할 시즌 후반기, 9월20일 상주에게 홈에서 1대2로 패한 후 3경기 무승으로 고전하며 2위 제주에게 턱밑 추격도 허용했다. 스플릿리그 직전 '괴물 센터백' 김민재가 무릎 수술로 전력에서 이탈하는 악재도 있었다.
최 감독은 위기 때마다 선수단을 향한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전북 정도 되는 팀이라면 이 정도 위기는 선수들 스스로 이겨내야한다. 연패가 없는 팀이 강팀이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 베테랑들의 자발적인 희생과 헌신도 돋보였다. 이동국 김신욱 에두의 '원톱 로테이션', 리그 최강의 공격수들이 선발도 풀타임도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팀 정신'으로 하나가 됐다. 최 감독은 "세 선수의 얼굴도 못 쳐다볼 만큼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올시즌 내내 달고 살았다. 부족한 출전시간에도 누가 '원톱'으로 나서든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이동국은 27경기에서 7골 5도움을 기록했고, 70-70클럽 고지에 올랐다. 에두는 29경기에서 12골 2도움을 기록했다. 김신욱은 32경기에서 10골을 쏘아올렸다. 짧은 시간에 공격포인트를 쌓기 위해 헤더 대신 '프리킥'까지 연마했다. 프리킥골을 2골이나 터뜨렸다. 일주일전 선발을 약속받은 제주전, 김신욱은 헌신적인 플레이로 전북의 2골 모두에 관여했다.
올시즌 전북의 우승은 단순한 스쿼드의 힘이 아니었다. 시련속에 피워낸 꽃이다. 위기에 더욱 강한 전북의 끈끈한 '1강 정신'으로 이뤄낸 우승, 5번째 별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전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