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위기의 신태용, 이럴수록 '기본'에 충실해야한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7-10-18 21:11


유럽 원정 평가전과 코치진 후보 면접등을 마치고 15일 오전 귀국한 신태용 축구 국가대표 감독과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위해 축구회관 회의실로 들어오고 있다.
축구회관=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7.10.15/

대표팀은 클럽팀과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시간이다. 오랜 시간 함께 호흡하고 준비할 수 있는 클럽팀과 달리 대표팀은 2~3일의 소집 기간 밖에 없다. 이 차이는 꽤 크다. 팀을 만드는 접근법 자체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클럽팀을 만드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도면을 그리고, 땅을 고르고, 원자재 하나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재료는 자르거나, 갈아서 쓸수도 있다. 축구로 돌아오자. 클럽팀 감독은 전술을 정하고, 선수를 영입하고, 육성하고, 훈련시켜서 하나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시간이 많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대표팀 감독은 조립가에 가깝다. 자신에 주어진 부품들을 제 자리에 맞게 붙여야 한다. 의외의 선택이 창조적인 모양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모양에 맞지 않는 부품을 억지로 붙이면 절대 올바른 제품이 완성될 수 없다. A대표팀 감독의 역할은 현 시점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를 뽑고, 선수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신태용 감독의 잘못은 이 기본을 놓치면서부터 출발한다. 신 감독은 자꾸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일단 지난 유럽 원정 2연전에서의 선수 선발은 논외로 하자. K리거를 뽑지 않아 최강의 대표팀을 않은 선택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신 감독의 의도는 K리그를 배려하기 위한 '선의'였다. 하지만 과연 '선수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고 있느냐'는 의문이 따른다.

'감독' 신태용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가 바로 전술이다. 현역시절에도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렸던 신 감독은 감독 변신 후에도 포백과 스리백, 원톱과 투톱을 오가는 다양한 전술을 앞세워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 감독이 전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유럽 2연전에서 신 감독의 전술 변화는 강박에 가까워 보였다. 물론 전문 윙백 부재에 따른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하나, 복잡한 변형 스리백을 택한 것은 '악수'였다. 신태용식 변형 스리백은 최근 스리백과 형태가 다르다. 최근 유행을 타고 있는 스리백이 좌우에 포진한 스토퍼가 전진해 중원의 숫자를 맞춰주는 것과 달리, 신 감독식 스리백은 '포어 리베로'를 활용한다. 가운데에 포진한 선수를 움직여 중원과 수비에서 숫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어려운 전술이다. 포어리베로의 역량이 결정적이다. 독일조차도 로타르 마테우스, 마티아스 잠머 등과 같은 선수가 사라진 후 포어리베로 전술을 쓰지 않고 있다. 장현수는 좋은 선수지만, 수비를 넘어 경기 전체를 읽을 시야를 갖춘 선수는 아니다. 변형 스리백을 통해 중원과 수비에서 모두 잘하려고 했지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꼴이 됐다. 아무리 전술 소화 능력이 좋은 A대표 선수라해도 단 몇일만에 수비 형태를 바꾸는 것은 모험이다. 우즈벡전과 모로코전, 모두 '변형 스리백'을 버린 후 경기력이 살아났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변형'이라는 단어 자체가 상대 때문에, 혹은 우리 자신 때문에 원래 계획을 틀어버린 '플랜B'를 의미한다. 신 감독은 '플랜A' 조차 해보지 않고 '플랜B'로 답을 찾으려 했다. 11월 A매치에서는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선수만 선택하면 된다. 유럽 원정 2연전을 통해 해외파에 대한 실험은 끝났다. 본선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선수인지 아닌지 어느정도 파악이 완료됐을 것이다. K리거는 남은 리그 경기를 지켜보며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를 뽑아야 한다. 이름값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필요하면 손흥민(토트넘)도 빼야 한다. 나이도 중요치 않다. 우즈벡전 염기훈(수원)의 활약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 다음에는 신 감독이 생각했던, 우리 선수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술을 준비하면 된다. 신 감독에게도, 선수들에게도 익숙한 4-2-3-1이 답일 수 있다. 전임인 홍명보, 슈틸리케 감독이 구사했던 포메이션이지만, 그 안에서 얼마든지 색깔을 달리할 수 있다. 신태용만의 축구를 보여주려고 할 필요도, 여유도 없다. 한번에 반전하려고, 한번에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면 안된다. 지금은 기본에 맞춰 눈 앞에 있는 과제 하나하나를 해치우는 것이 중요하다. 신 감독이 할 것은 월드컵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한국만의 축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급할수록 정도를 걷는 것이 정답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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