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챌린지(2부리그) 대전 시티즌(구단주 권선택)이 또 표류할 기미다.
윤정섭 대전 사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이유는 성적부진이다. 그런데 구단 안팎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차기 대표이사 선임을 논의하는 임시 이사회 하루 전 축구계 및 지역 인사들이 참가하는 '토론회' 일정이 잡혔다. 내달 1일 새 대표이사에게 구단 운영을 맡긴다는 계획이다.
일련의 움직임은 판박이다.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은 대전은 바람잘 날이 없었다. 지금까지 16차례나 사장이 바뀌었고 임기는 단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사령탑 자리도 10명이 거쳐갔다. 3대인 최윤겸 감독이 물러난 2007년까지 안정적인 자리였으나 이후 10년 동안 7명의 감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팀을 떠났다. 내년 1월까지 구단을 이끌기로 했던 윤 사장의 사의도 성적부진보다는 '정치적 셈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높다. 대전은 더 이상 '축구특별시'가 아닌 '말 많은 골칫거리 구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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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대전의 FA컵 우승이 확정될 당시 선수들이 몰려나와 환호하고 있다. 스포츠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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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스토리'를 가진 구단이었다. 클럽하우스가 없어 연립빌라에서 생활하고 지역, 대학 축구장을 전전하며 훈련했지만 선수들의 열정은 어느 구단 못지 않은 팀이었다. 온전치 않은 시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태극마크까지 달았던 '샤프' 김은중을 비롯해 '시리우스' 이관우, 1997년 K리그 신인왕 신진원, '수호천왕' 최은성, 재기에 성공한 고종수 등 많은 스타들을 배출했다. 최근 23세 이하(U-23) 대표팀에서 맹활약한 황인범도 대전의 작품이다. 다소 부족하지만 꿈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의 뒤에는 열성적인 팬들의 응원이 뒤따랐다. 2001년엔 K리그에서 단 1승에 그치며 꼴찌에 그쳤으나 FA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 '꼴찌들의 반란'으로 감동을 안겼다. 2014년엔 군경팀 제외 첫 챌린지 우승의 역사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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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당시 대전 소속이었던 김은중(오른쪽)이 득점에 성공하자 이관우의 등에 업히는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스포츠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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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은 썩고 있었다. 반복되는 사장 교체 속에 일관성 없는 행정과 장기적인 계획 부재가 누적됐다. 시도민구단의 고질병인 '정치논리'의 타파가 해결책으로 꼽혔지만 구태만 반복될 뿐이었다. 대전은 어느 순간부터 '꿈도 희망도 없는' 구단처럼 비쳐지고 있다. 축구계 관계자는 "구단 안팎이 패배주의로 물들어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전의 운명은 안갯속이다. 벌써부터 지역 정계 뿐만 아니라 축구계 유력 인사의 영향력 행사설이 돌고 있다. 다른 팀들은 당장 내년 시즌 준비 윤곽이 잡힌 상황이지만 대전은 당장 올 시즌을 어떻게 마무리할 지도 오리무중이다. 김종현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직을 맡겨놓았지만 차기 감독 선임은 올스톱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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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당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부천 간의 K리그 경기 모습. 스포츠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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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를 통해 선임된 새 사장이 분위기를 반전시킬지도 미지수다. 지난 2014년 50%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된 권 시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의를 표명했던 윤 사장은 권 시장과 오랜기간 친분을 유지해 온 인사였다. 새 사장 선임도 구단주인 권 시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권 시장의 형이 확정되어 시장직을 상실하게 되면 대전의 운명은 또 한번 흔들릴 수밖에 없다.
축구계는 착잡한 분위기다. 지난 20년 동안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고 우수한 자원을 길러낸 구단의 쇠락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분위기다. 축구계 관계자는 "정치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구단 수뇌부부터 선수단까지 후폭풍이 이어지는 적폐가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리 걸음만 20년째다. 전환점을 찾지 못하는 대전의 운명을 바꿀수만 있다면 '해체와 재창단'이라는 극단적인 수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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