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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월드컵 역사에서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대회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원정 16강) 두 번이다. 거스 히딩크가 이끌었던 2002년엔 극적인 승부와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전국민적 응원 등 개최국 프리미엄까지 더해지면서 믿기지 않는 멋진 시나리오가 나왔다. 허정무가 지휘했던 2010년 남아공에선 이운재부터 박지성(주장)을 거쳐 기성용까지 신구조화가 절묘하게 돋보였다.
우리는 지난달 끝난 아시아지역 최종예선과 최근 친선경기를 통해 다시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똑똑히 보았다. 상대가 조금만 강한 압박(프레싱)을 가해와도 그걸 풀고 앞으로 나아갈 개인기술을 갖춘 선수가 거의 없다. 태극전사 중 현재 가장 몸값이 비싼 손흥민(토트넘)도 상대의 밀착수비 앞에서 힘겨워했다. 그리고 그의 스피드를 활용할 '공간'이 없을 경우 다른 대표선수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또 최전방 중앙 공격수 중에서 붙박이라고 꼽을 만한 선수가 없다.
허리 진영을 살펴봐도 어떤 상대를 만나도 우위를 점할 것 같지 않다. 기성용과 이청용 둘다 기량면에서 최정점에서 약간씩 내려와 있는 시점이다. 포백 수비는 더 오합지졸이다. 지난 1년 동안 고정된 주전이라고 꼽을 수 있는 수비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때부터 안정적인 수비 틀을 만들지 못했다.
미드필더 출신인 신태용 감독은 '공격 축구'를 선호한다. 멋지게 상대를 제압하고 싶어한다. 다수의 우리 축구팬들이 바라는 축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우리 태극전사들은 신태용 감독의 머릿속 그림을 실제 그라운드에서 그려낼 준비가 안 돼 있다. 내년 월드컵에서 공격 대 공격으로 맞대응해선 승산이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 축구의 발전 속도는 빠르지 않다. 남미나 유럽 처럼 지금 이순간에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는게 아니다. 박지성(전 맨유) 손흥민 같은 유럽 빅클럽에서 뛸 수 있는 '큰 선수'는 몇 년이 지나야 한 명 나올 정도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 축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축구,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스타일을 정하고 그걸 구현하기 위해 남은 로드맵을 그려가는 게 맞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선 수비, 후 역습' 축구가 그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격 보다 수비를 먼저 완성하는 게 우선이다. 우리 태극전사들에게 높은 골결정력과 다득점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실점을 최소화하는 게 더 낫다.
그리고 성장이 더딘 개인기 보다 팀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훈련 모델과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 A대표팀에는 호날두나 메시 처럼 특정 개인 한 명이 경기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는 해결사가 없다. 앞으로 8개월 안에 그런 선수를 만들지도 못한다. 따라서 팀으로 뭉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내년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할 팀들은 전부 기본 전력에서 우리 보다 앞서는 팀들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은 약자이고, 상대는 강자다. 따라서 우리는 한발 더, 빠르게 뛰어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강한 체력과 빠른 스피드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는 세트피스 필살기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로드맵의 기본은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게 첫번째이다. 12월 1일 본선 조추첨에서 상대할 팀들이 정해지면 그것에 맞춰 로드맵을 업그레이드하면 된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