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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K리그에 올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는 악몽 그 자체다. 하지만 태국 프리미어리그에게는 올 시즌 ACL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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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1세에 불과한 천 코치의 축구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국민은행에서 제법 이름을 알린 아버지(천병호씨)를 보고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운 천 코치는 중학교 3학년때 당시 유행하던 브라질 축구유학을 결심했다. 브라질에서 중,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 유스팀에 입단했다. 코린티안스, 파우메이라스, 플라멩고 등 빅클럽들이 주목한 유망주였다. 하지만 갑자기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해 피지컬을 공부하기로 시작했지만 선수의 길을 포기하지 못했다. 2005년 오랜 브라질 생활을 못이기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2005년 울산 2군에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결과는 또 다시 실패였다. 2006년 다시 브라질로 돌아가 4부리그 팀에 입단했다. 거기서도 빛을 보지 못하고, 2008년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호남대 축구학과에 입학해 1년을 보낸 뒤 2009년 송호대 선수로 들어갔다. 하지만 또 다시 정착에 실패했다.
새로운 길이 열렸다. 2011년 홍명보 장학재단에서 선수들을 브라질로 유학을 보내는 사업을 했는데, 천 코치가 이를 담당했다. 어린 선수들을 관리하면서 코칭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한려대에서 코치로 생활하던 천 코치는 선수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했다. 2012년 K3 이천에 입단했다. 물론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일도 병행했다. 낮에는 코치를 하고, 밤에는 축구를 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 마지막까지 발버둥 쳤지만 천 코치는 끝내 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 천 코치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군대까지 면제될 정도였다. 선수로 돈을 벌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끝이 어딘지 보고 싶었다. '갈때까지 가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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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태국 2부리그 파타야의 코치로 들어간 천 코치는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며 승격까지 했다. 갖은 고생 끝에 얻은 성과였다. 천 코치는 "처음 파타야에 왔을때 월급이 자꾸 밀리더라. 전기까지 끊긴채 살았다. 판정 때문에 싸우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파타야에서 성실히 선수를 지도하던 천 코치에게 깜짝 선물이 찾아왔다. 리그 최강 무앙통에서 코치직을 제안한것. 천 코치는 "연말에 파타야와 계약이 끝나고 휴가를 다녀왔는데 무앙통에서 연락이 왔다. 파타야에서 내 모습을 잘 봤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천 코치는 무앙통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태국은 더운 날씨에도 2~3일 간격으로 시합이 계속 진행된다. 회복이 중요하고, 훈련 역시 짧고 강할 수 밖에 없다. 천 코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브라질에서 오래 생활한 천 코치는 외국인 선수와의 의사소통에서도 중요한 몫을 맡고 있다. 지난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승리한 것은 천 코치에게 특별한 기억이었다. 천 코치는 "그때 2군에서 함께 있던 닥터가 나를 보고 놀라더라. 축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감회가 새롭다"고 웃었다.
태국 축구의 최전선에 있다보니 장단점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천 코치는 "정말 열기가 엄청나다. 아직도 가끔씩 분위기를 보고 소름이 돋기도 한다. 리그 수준도 많이 올라갔다. 이제 웬만한 K리거는 쳐다도 안 볼 정도다. 투자를 많이 해서 선수들도 그 변화에 맞춰 올라간 모습"이라며 "하지만 아직까지 시스템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선수들도 프로답지 못하고, 무엇보다 축구를 잘 모르는 구단주가 너무 많이 개입한다"고 했다.
천 코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지도자로 대성하는 그 날을 꿈꾼다. 지금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다. 다양한 경험을 한 천 코치의 코칭철학은 재밌게도 '카멜레온'이었다. 그는 "내가 어디에 있던지간에 상황에 맡게 철학을 맞춰야 한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상황이 다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나만 따라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 들어가서 변화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천 코치는 마지막으로 "1년을 통역을 해서 그런지 통역으로 출발해서 세계 최고의 지도자가 된 조제 무리뉴 맨유 감독이 롤모델이다. 태국이 됐던, 어디가 됐던 장기적으로 감독을 해보고 싶다. 물론 K리그였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