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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한국축구의 혜택을 받은 축구인이다. 한국 축구가 어려운 시기에 역할이 있다면 마땅히 해야 한다."
정해성 A대표팀 수석코치는 5일 대한축구협회에 전격 사의를 표명한 후 이렇게 말했다. 기술위원회가 신태용 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A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이튿날이다.
지난 3월 말, 중국-시리아전 졸전 직후 기술위는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과 함께 정해성 수석코치 영입을 결정했다. 대표팀 내에서 선수들의 컨디션을 살뜰히 챙기고, 원팀 정신을 하나로 묶어낼 소통과 경륜의 미덕을 갖춘 수석코치 영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2010년 남아공월드컵 첫 원정 16강의 역사를 A대표팀 코칭스태프로 함께했고, 부천, 제주, 전남 등 클럽팀 지도자 경험도 풍부한 베테랑, 정해성 수석코치의 영입은 신의 한수로 인정받았다. 실제로 카타르와의 최종예선 8차전, 정 수석코치의 역량은 힘을 발휘했다. 0-2로 밀리던 하프타임, 특유의 카리스마 화법으로 선수들의 투혼에 불을 질렀다. 후반 2골을 따라붙은 데는 정 코치의 리더십이 힘을 발휘했다는 후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 직후 정해성 감독 대행 체제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이 흘러나왔지만, 4일 기술위원회가 신태용 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선배'로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경륜 있고 현명한 감독, 정 수석코치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의 결단은 용퇴였다. 축구계의 선배로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한국축구의 위기 속에 자신의 존재가 후배들에게 작은 부담이라도 될까 걱정했다. "짧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가족들과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했다"며 헛헛하게 웃었다.
슈틸리케호의 부진은 대표팀 안팎에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소통'을 이유로 차두리 전력분석 담당관이 영입됐고, 3월 사임했다. 4월에는 '소통'을 이유로 정해성 수석코치가 영입됐고, 7월 사임하게 됐다.
정작 정 수석코치는 원망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빨리 새판을 짜는 것이 한국 축구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내가 이렇게 돼 있는 상황에서 협회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같다. 어려운 시기에 한국축구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 끝까지 대표팀과 한국축구의 미래만을 걱정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