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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과의 엄중한 약속이다.'
K리그 클래식 7경기 연속 무패(5승2무)로 리그 2위까지 치고 올라섰다.
선두 전북과의 승점 차는 3점. 성적도 성적이지만 울산팬들을 더욱 기분좋게 하는 것은 17일 포항과의 '동해안 더비'였다. 2대1 짜릿한 승리. 포항과의 개막전(2대1 승)에 이은 더비 연승이다. 작년 시즌 마지막 맞대결(2016년 9월 18일·1대0 승)까지 포함, 포항전 3연승은 2011년 10월∼2012년 6월 4연승 이후 최고 기록이다.
시즌 단위로 보면 울산이 동해안 더비에서 2승을 먼저 하는 등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것도 2013년 2승1무1패 이후 처음이다. 2014년엔 1승1무2패였고 2015년 1승2무, 2016년 1승1무1패였다.
울산이 동해안 더비에서 부쩍 강해진 데에는 숨은 비결이 있다. '서포터스와의 약속'이다. 동해안 더비에서 주춤했다가는 우스갯소리로 '맞아 죽을 판'이니 죽기 살기로 뛸 수밖에 없었던 게다.
'약속'의 기원은 올시즌 개막 직전 서포터스와의 간담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으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서포터스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든 구단들이 마련하는 자리다.
신임 김도훈 감독이 부임했으니 상견례도 겸해 소통 창구를 넓히는 게 울산 구단으로서는 더욱 필요했다. 신임 감독이 연착륙하려면 서포터스의 상생 노력이 받쳐줘야 그 시기도 빨라질 수 있다.
김 감독과 서포터스의 첫 만남 자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은 털고 새출발하자는 의기투합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과거 인천 사령탑 시절 파가 나뉘어 제각각 응원을 했던 인천 서포터스를 설득해 합동응원을 이끌어냈던 김 감독은 친화력으로 귀를 열었다.
이런 가운데 간절한 당부가 김 감독에게 전달됐다. "첫 시즌이라 많은 걸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다른 팀은 몰라도 포항한테 만큼은 밀리지 마세요." 김 감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울산팬들이 동해안 더비를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는지 느끼게 해주는 무거운 경고처럼 들렸다.
평생 한국 축구판에 살아온 그가 울산팬들의 이런 마음을 이해못할 리 없었다. 사실 동해안 더비는 '슈퍼매치(서울-수원)'보다 더 깊은 전통과 애증의 스토리를 가진 라이벌전으로 통한다.
1998년 K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 골키퍼 김병지(당시 울산)의 극적인 헤딩골 이후 울산의 승부차기 승리, 김병지의 이적(울산→포항·2001년), 포항-러시아리그를 거친 오범석의 울산으로 K리그 복귀(2009년), 설기현의 이적(포항→울산·2011년), 2011년 K리그 플레이오프 울산 승리, 2013년 K리그 40라운드 포항의 역전 우승 등 숱한 사건들이 라이벌 의식을 고조시켜왔다.
가깝게는 작년 6월 29일 K리그 클래식 17라운드가 열렸던 포항에서 아픈 기억이 있다. 당시 울산은 포항으로 이적한 양동현의 맹활약에 동해안 더비 사상 최다 점수차인 0대4로 패했다. 이에 분노한 울산팬들이 선수단 버스를 막고 항의시위를 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당시 윤정환 감독이 버스에서 내려 해명한 뒤 일단락된 바 있다.
이 같은 쓰라린 기억을 지우지 못한 서포터스와의 약속을 잘 아는 김 감독과 울산 선수들은 올시즌 동해안 더비에서만큼은 정신무장을 더욱 강화했다. 17일 경기 종료 직전 극장골도 '약속'의 엄중함을 받들기 위한 투혼의 결과물이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