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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드컵 현장]경기 직전 일장 연설+통역 부족, 아직 갈 길이 먼 러시아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7-06-18 08:30 | 최종수정 2017-06-18 08:32

ⓒAFPBBNews = News1


[상트페테르부르크스타디움(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분명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부족함은 필연이다. 물론 잘한 점도 있었다. 다만 예상 밖의 일 하나가 많은 것을 가렸다. '상식 밖 의전'이었다.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와 뉴질랜드의 2017년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전(A조 첫 경기)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관심이 컸다. 내년 월드컵을 향한 첫 발걸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관심이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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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할 것도 있었다. 안전이었다. 4월 초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11명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러시아 당국은 철통 보안을 펼쳤다. 군인과 경찰로 구성된 보안 요원들은 입장하는 관중들 한명씩 몸수색을 펼쳤다. 관계자도 예외가 없었다. 셔틀버스도 경기장 앞에서 멈췄다. 탑승자들은 다 내렸다. 셔틀버스는 버스대로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 엔진룸도 열었다. 하나하나 다 챙겼다. 탑승자들은 소지품을 모두 X-레이 검사대에 올려놓았다. 금속 탐지기도 통과했다. 가방도 다 열었다. 전자제품은 모두 작동시켜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만큼 안전에 철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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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기 시작 직전이었다. FIFA주제가가 울려퍼졌다. 심판진과 양 팀 선수들이 나왔다. #RUS NZL이라는 해시태그도 들고 나왔다. SNS에서 이슈를 만들어보겠다는 FIFA의 새로운 시도였다. 이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양 팀 선수들이 도열했다. 이제 국가를 부르고 악수를 한 뒤 90분 경기만 펼치면 됐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장내 아나운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소개합니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이 갑자기 등장했다. 예상에 없던 방문이었다. 관중들은 환호했다.

이정도에서 그쳤으면 됐다. 푸틴 대통령은 과욕을 부렸다. 갑자기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4분 가까이 연설을 펼쳤다. 그 사이 양 팀 선수들은 바람을 맞은 채 서 있어야만 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이 끝났다. 이제 경기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났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었다. 인판티노 회장도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러시아 인사말을 섞어가며 시간을 끌었다. 선수들은 제자리에서 뛰며 몸이 굳어가는 것을 방지했다. 관중들조차도 지루해했다. 지도자들의 과도한 욕심이었다. 경기 시작도 하기 전에 김이 새버리고 말았다. 선수들은 다시 몸을 데우느라 애를 쓸 수 밖에 없었다.

해프닝은 이어졌다. 예정보다 7~8분 늦게 국가가 울려퍼졌다. 원정팀인 뉴질랜드의 국가가 나왔다. 갑자기 북쪽 골대 뒤쪽에서 대형 통천이 올라갔다. 문제는 한쪽만 올라간 것이다. 러시아를 상징하는 독수리 문양이었다. 통천을 담당한 팬들이 착각한 것이다. 이미 한쪽 귀퉁이는 끝까지 올라갔다.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뉴질랜드 국가 도중 올라갔던 한쪽 귀퉁이를 끌어내렸다. 이어진 러시아 국가 시간에 통천을 펼쳤다. 때늦었다. 이미 감동도, 신선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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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에도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기자회견장이었다. 이날 경기 MVP로 나선 표도르 스몰로프와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 러시아 감독이 나왔다. 스몰로프가 먼저 러시아어로 소감을 밝혔다. 취재진은 동요했다. 귀에 꽂은 통역기에서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FIFA 관계자가 뒤쪽에서 부랴부랴 달려왔다. 그런 뒤 기자회견장 책상에 앉아있던 다른 관계자에게 "스몰로프의 말을 독일어로 얘기해주면 내가 지금 영어로 통역해주겠다"고 했다. 뜬금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영어 통역이 자리에 없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영어 통역은 기자회견장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책상 위에 앉아있던 FIFA관계자는 영어에 서툴렀다.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관계자가 스몰로프의 러시아어를 독일어로 통역하고, 이를 다시 다른 관계자가 영어로 바꾸겠다고 했다.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대책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상황은 한 방에 정리됐다. 체르체소프 감독이 갑자기 "스몰로프는 영어에 능통하다. 그가 영어로 답하면 된다"고 했다. 사색이 되었던 FIFA관계자들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돌았다. 스몰로프는 유창한 영어로 승리의 기쁨을 표현했다. 그리고 스몰로프의 인터뷰가 끝난 뒤 영어 통역이 등장했다. 취재진들은 다들 쓴웃음만 지었다.

내년 월드컵 성공 개최를 위해 러시아가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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