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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 99%는 선수, 1%는 감독' 바로 그 1%가 문제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7-03-29 21:20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이 28일 오후 8시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리아를 상대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7차전 경기를 펼쳤다. 경기 중 생각에 잠긴 슈틸리케 감독.
상암=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7.03.28

'명장'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은 "축구에서 99%는 선수고 감독은 1%다. 하지만 그 1%가 99%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감독이란 그런 존재다. 감독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승리할 수도, 패배할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그 1%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A대표팀의 축구가 '노답'인 이유는 슈틸리케 감독의 '잘못된' 선택에서 출발한다.

이번 중국-시리아전의 가장 큰 문제는 '고명진 카드'였다. 고명진(알 라이안)의 개인능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고명진은 분명 수준급 '중앙 미드필더'다. 그는 중앙에서 공격적으로 활용될 때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그를 전혀 다르게 사용했다. 중국전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시리아전에서는 측면 미드필더로 활용했다. 고명진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1명'의 선수를 다른 위치에 놓았을 뿐인데 '11명'의 선수들이 함께 흔들렸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은 전진하지 못했고, 수비수들의 부담은 커졌다. 전술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고명진이 왼발을 쓰는 선수라서 오른쪽 윙으로 배치했다. 안으로 잘라 들어와서 왼발을 활용해 황희찬(잘츠부르크)에게 더욱 많은 볼이 갈 수 있도록 했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설명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벤치에는 패스도 좋고, 측면에서도 뛸 수 있는 '왼발잡이' 김보경(전북)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이런 실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장현수(광저우 부리)를 계속해서 윙백으로 기용하며 이미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0월 이란전(0대1) 참패 이후 생각을 바꿨지만 그 전까지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장현수 카드에 집착하는 사이 한국축구는 윙백을 테스트할 기회를 잃었다. 결국 손에 쥔 패가 줄어든 슈틸리케 감독은 왼쪽 윙백이 익숙치 않은 오른발잡이 윙백들을 기용하는 파행을 거듭해야 했다. A대표팀이 이번 최종예선 내내 윙백 부재로 고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아쉬운 선택이다.

대표팀과 클럽팀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시간이다. 오랜 시간 함께 호흡하고 준비할 수 있는 클럽팀과 달리 대표팀은 2~3일의 소집 기간 밖에 없다. 그래서 대표팀 감독은 조립가에 가깝다. 자신에 주어진 부품들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안성맞춤 자리에 붙여 완성해 내야 한다. 의외의 선택이 창조적인 완성품을 낳을 수도 있지만, 모양에 맞지 않는 부품을 억지로 끼워 붙이면 결코 좋은 완성품이 될 수 없다. 대표팀 감독의 역할은 전략에 따라 선수를 선발해 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전술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대표팀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비센테 델 보스케 전 스페인 감독, 요아킴 뢰브 독일 감독이 그랬다. 델 보스케 감독은 바르셀로나 소속 선수들의 플레이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전술을 만들었고, 뢰브 감독은 소속팀에서의 포지션을 철저히 지켜준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 기본을 놓치고 있다.

지난 시즌 전북을 아시아챔피언으로 만든 김보경-이재성 조합은 한번쯤 실험해 볼만한 카드였다. 전북에서 매주 수비축구를 상대했던 이들은 한국에서 밀집수비 타파법을 가장 잘 아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이를 외면했다. 김신욱(전북)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휘어져 들어오는 크로스보다 찍어주는 크로스가 용이하다. 김신욱이 맹위를 떨쳤던 카타르전과 우즈벡전 측면에는 홍 철(상주)이 있었다. 홍 철이 바로 찍어주는 크로스에 능한 선수다. 하지만 이번 중국-시리아전에는 그런 크로스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당연히 위력이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선수들 탓으로 돌리기에는 선수들을 100% 살려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물론 팀 사정에 따라 포지션 파괴 혹은 변칙 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있다. 충분한 테스트 후 실행이다. 중요한 무대에서 쓰기 전까지 평가전을 통해 장단점을 완벽히 파악한 후에야 결단을 내려야 한다. 독일이 2014년 브라질월드컵 우승 당시 '센터백' 울리 회베데스(샬케)의 오른쪽 윙백 기용은 철저한 준비가 만든 결과였다. 반면 슈틸리케 감독의 변칙에는 검증 과정이 생략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술변화를 줬더니 이제는 했다고 비난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왜 전술을 바꿨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왜 '그렇게' 전술을 바꿨냐고 지적하는 것이다. 기성용의 원볼란치(한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고명진의 윙어 기용은 슈틸리케 부임 후 한차례도 선보인 적이 없는 생소한 카드다. 검증되지 못한 변칙의 결과는 당연히 실패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신이 아닌 이상 잘못된 선택을 할 수 는 있다. 경기는 결과로 판단하지만, 감독은 그 과정을 모두 예측해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계속되서 잘못된다면? 그건 분명히 판단미스가 아닌 자질의 문제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플랜A는 이번 최종예선 내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확실한 플랜B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슈틸리케호 출범 후 역전승이 단 한번 뿐이었다는 점, 한번 붙었던 팀에게 매번 고전하고 있는 점은 누가 뭐래도 감독의 문제다. 우리는 패를 보여주고 경기를 하고 있다.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와 마르셀로 리피 감독 부임 후 확달라진 사우디와 중국을 보면서, 우리보다 출발은 나빴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는 비야드 할릴호지치가 이끄는 일본을 보면서 속이 쓰라린 이유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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