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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이 밝았다.
최종예선 내내 슈틸리케호의 플레이는 똑같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강조한대로 매경기 볼을 점유했다. 하지만 점유율은 허상이었다. 볼을 갖고 있었을 뿐 우리가 경기를 주도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느린 템포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느리게 볼이 흘러가다보니 상대는 수비를 정비할 시간을 벌었고, 우리는 그 밀집수비 속에 뒤늦게 들어가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발 빠른 선수들이 많은 한국축구는 '업템포'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슈틸리케호는 점유율에 사로잡혀 '템포'를 놓쳐버렸다. 템포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 빠르게 볼을 돌려야 하고, 빠르게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시리아 수비가 강하기는 하지만 철옹성은 아니다. 우리가 파고들 공간이 충분히 있다. 이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빠른 템포'다.
세트피스를 활용해라
세트피스는 프리킥, 코너킥 등 볼이 정지된 상황에서 경기가 전개되는 플레이를 의미한다. 축구에서 가장 쉽게 골을 넣을 수 있는 루트다. 약속된 플레이 한번으로 골을 넣을 수 있다. 특히 '인의 장막'을 걷어내는 최고의 수단이다. 세트피스 순간만큼은 밀집수비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슈틸리케호는 세트피스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 이번 최종예선 들어 세트피스 상황에서 넣은 골은 단 1골에 그쳤다. 지난해 9월1일 중국과의 최종예선 1차전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손흥민이 프리킥한 볼이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의 머리를 거쳐 문전으로 흘렀고, 중국의 백전노장 정즈(광저우 헝다)의 발맞고 굴절돼 그대로 골로 연결됐다. 세트피스로 활로를 연 한국은 이날 3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슈틸리케호는 이후 5경기에서 총 28번의 코너킥, 58번의 프리킥 기회를 얻었지만 단 한골도 넣지 못했다. 무엇보다 상대를 현혹시킬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 눈빛만 봐도 통할 수 있는 확실한 루트가 있어야 한다. 약속된 세트피스를 통해 공격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물론 세트피스 수비에서도 집중력을 잃어선 안된다.
실점은 금물
시리아전 지상과제는 승리다. 공격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공격 일변도로 나서면 안된다. 시리아는 선수비 후역습을 팀컬러로 한다. 역습 속도가 빠르고 날카롭다. 자칫 밸런스가 무너진 채 경기를 하다보면 상대에 '틈'을 줄 수 있다. 안정된 공수밸런스는 물론 상대의 역습에 대비한 전략이 필요하다.
실수도 줄여야 한다. 최종예선에 진출한 팀은 대부분 '한 칼'이 있다. 슈틸리케호는 매 경기 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실수가 나올 경우 치명타로 돌아올 수 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선 기본에 충실한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 무리하지 않고 정돈된 플레이를 해야한다. 서두르다 보면 엇박자를 낼 수 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의 독은 부담감이다. 선제 실점은 그 부담감을 배가시킬 수 있다. 지금처럼 처진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격만큼이나 안정된 수비는 필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