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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전북 현대의 아시아 제패. 선수 모두 몸을 아끼지 않은 결과였다.
권순태의 부상을 아는 선수들은 몇몇 있긴 했다. 그러나 최강희 전북 감독에게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권순태는 "뛸 수 있으면 뛰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할 수 있는데 못하겠다고 하는건 주장으로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참을 수 없으면 감독님께 부상 사실을 털어놓으려 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사는 결코 아니다"며 "아픔을 숨기고 경기를 뛰고 있다는 것이 후배 골키퍼들에게 독하다고 보일 수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으면 이를 악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여태까지 버티고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특히 결과물이 잘 나왔다"며 웃었다.
권순태가 포기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2014년이 끝난 뒤 자유계약(FA) 신분이 된 권순태는 잔류와 이적의 갈림길에 섰다. 당시 전북은 5년 장기계약으로 '원 클럽맨'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권순태가 구단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당연히 출중한 경기력밖에 없었다. 권순태는 "'먹튀(먹고 튄다)' 얘기를 듣기 싫었다. 그 동안 전북에서 장기계약을 했던 선수들에 대한 좋지 않은 선례들이 있었다. 나도 '먹튀'가 되면 후배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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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신산초 3학년부터 축구화를 신은 권순태는 원래 필드 플레이어였다. 중앙 수비수였다. 그러나 골키퍼가 된 결정적 사연이 있다. 부모님에게 축구부 생활을 들킨 권순태는 시 대회에서 우승을 해야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 신산초는 시 대회 4강에서 결승행을 위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반드시 우승이란 타이틀이 필요했던 권순태는 골키퍼를 자청했고 두 차례 상대의 킥을 막아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렸다. 이후 결승에서도 연출된 승부차기에서 두 차례 선방으로 신산초에 우승을 안겼다.
2006년 전북 유니폼을 입은 권순태는 최근까지도 '희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2014년 1월 최 감독님께서 '희생해라. 무조건 웃어라'고 말씀하시더라. 그 당시에는 이게 뭔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며 "우연히 과거 동영상을 보게 됐다. 우리 팀이 이겼을 때 모두가 기뻐하는데 나만 멍하니 앉아 있더라. 이런 것들이 남들의 눈에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모습이었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 때부터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부터 바꾸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권순태가 지난 10년간 우승컵에 입 맞춘 건 총 5회(K리그 3회, ACL 2회). 아직 FA컵에선 우승 인연을 맺지 못했다. 권순태는 "리그와 ACL 우승을 해봤다고 목표가 없는 건 아니다. 항상 새로운 목표를 향해 뛴다. 은퇴하기 전까지 많이 우승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권순태에게 나태함은 곧 은퇴나 다름없다. 그는 "2013년 군에서 전역한 뒤 당연히 내 자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그 때 나태함의 무서움을 경험했다. 이후 매년 주전은 보장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몸이 더 좋은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가 뛰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기에 나는 더 최선을 다하고 준비를 잘 해야 한다"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