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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캡틴' 권순태, 4월부터 골절된 정강이 참고 뛰었다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6-11-30 05:14



2016년, 전북 현대의 아시아 제패. 선수 모두 몸을 아끼지 않은 결과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길이 가는 선수가 있다. 시즌 내내 부상 투혼을 펼친 선수가 바로 '주장' 권순태(32)다. 스포츠조선은 ACL 우승을 위해 차마 공개하지 못했던 권순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한다.

권순태는 지난 4월부터 오른정강이가 골절된 상태였다. 정밀진단 결과, 급성 피로골절이었다. 정강이뼈에도 금이 간 상태였다. 최소 6개월 휴식 또는 시즌 아웃도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권순태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주장으로서의 강한 책임감과 중요한 경기의 연속이었던 팀 사정 때문이었다. 부상을 숨겼다. 권순태는 "당시 급성 피로골절이었다. 그런데 아픔을 참고 경기를 뛰다 보니 통증이 무덤덤해졌다. 골절된 부분이 굳어가는 만성으로 변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경기가 끝나면 정강이가 크게 부어 올랐다. 그러다 붓기가 가라앉고 다시 출전하는 패턴이 계속됐다. 사실 참고 뛸 만 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했다. 4~6월까지 중요한 경기가 많았다. 진통주사를 맞고 그라운드 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권순태의 부상을 아는 선수들은 몇몇 있긴 했다. 그러나 최강희 전북 감독에게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권순태는 "뛸 수 있으면 뛰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할 수 있는데 못하겠다고 하는건 주장으로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참을 수 없으면 감독님께 부상 사실을 털어놓으려 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사는 결코 아니다"며 "아픔을 숨기고 경기를 뛰고 있다는 것이 후배 골키퍼들에게 독하다고 보일 수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으면 이를 악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여태까지 버티고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특히 결과물이 잘 나왔다"며 웃었다.

권순태가 포기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2014년이 끝난 뒤 자유계약(FA) 신분이 된 권순태는 잔류와 이적의 갈림길에 섰다. 당시 전북은 5년 장기계약으로 '원 클럽맨'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권순태가 구단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당연히 출중한 경기력밖에 없었다. 권순태는 "'먹튀(먹고 튄다)' 얘기를 듣기 싫었다. 그 동안 전북에서 장기계약을 했던 선수들에 대한 좋지 않은 선례들이 있었다. 나도 '먹튀'가 되면 후배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며 전했다.


권순태에게는 힘든 시즌일 수밖에 없었다. 부상을 숨긴 대가를 지금부터 치러야 한다. 권순태는 다음달 8일부터 일본 오사카와 요코하마에서 펼쳐질 2016년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출전을 포기했다. 대신 수술 또는 재활에 돌입하기로 했다. 권순태는 "클럽월드컵은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년 시즌이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파주 신산초 3학년부터 축구화를 신은 권순태는 원래 필드 플레이어였다. 중앙 수비수였다. 그러나 골키퍼가 된 결정적 사연이 있다. 부모님에게 축구부 생활을 들킨 권순태는 시 대회에서 우승을 해야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 신산초는 시 대회 4강에서 결승행을 위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반드시 우승이란 타이틀이 필요했던 권순태는 골키퍼를 자청했고 두 차례 상대의 킥을 막아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렸다. 이후 결승에서도 연출된 승부차기에서 두 차례 선방으로 신산초에 우승을 안겼다.

2006년 전북 유니폼을 입은 권순태는 최근까지도 '희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2014년 1월 최 감독님께서 '희생해라. 무조건 웃어라'고 말씀하시더라. 그 당시에는 이게 뭔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며 "우연히 과거 동영상을 보게 됐다. 우리 팀이 이겼을 때 모두가 기뻐하는데 나만 멍하니 앉아 있더라. 이런 것들이 남들의 눈에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모습이었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 때부터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부터 바꾸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권순태가 지난 10년간 우승컵에 입 맞춘 건 총 5회(K리그 3회, ACL 2회). 아직 FA컵에선 우승 인연을 맺지 못했다. 권순태는 "리그와 ACL 우승을 해봤다고 목표가 없는 건 아니다. 항상 새로운 목표를 향해 뛴다. 은퇴하기 전까지 많이 우승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권순태에게 나태함은 곧 은퇴나 다름없다. 그는 "2013년 군에서 전역한 뒤 당연히 내 자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그 때 나태함의 무서움을 경험했다. 이후 매년 주전은 보장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몸이 더 좋은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가 뛰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기에 나는 더 최선을 다하고 준비를 잘 해야 한다"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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