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4연패+V7'로 마무리한 울산미포조선의 마지막 날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6-11-13 22:26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착잡하다."

김창겸 울산현대미포조선 감독의 표정은 복잡해보였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은 12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강릉시청과의 2016년 인천국제공항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1대1로 비겼다. 1차전에서 1대0으로 승리한 울산현대미포조선은 1, 2차전 합계 2대1로 승리하며 2016년 내셔널리그 왕좌에 올랐다. 전인미답의 4연패에 성공한 울산현대미포조선은 통산 7회 우승(2007, 2008, 2011, 2013, 2014, 2015, 2016년)의 금자탑을 쌓았다.

하지만 마음껏 웃지 못했다. 아니 웃을 수 없었다. 이날은 울산현대미포조선의 이름으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다. 올 시즌을 끝으로 안산 시민구단에 흡수된다. 내셔널리그 최강으로 보낸 18년의 역사를 마무리했다. 유종의 미, 그래도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김 감독은 "작년 우승과 지금 우승에는 많은 느낌 차가 있다. 4연패를 한 것에 기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선수들에 미안스럽다. 즐겁지만 착잡한 심정이 있다"고 했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의 해체 소식은 일찌감치 전해졌다. 선수단은 후반기 내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시즌을 치러야 했다. MVP로 선정된 김민규는 "(해체) 소식을 들었을때 처음에는 선수들이 흔들리는게 보였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김 감독은 원칙을 앞세워 동요하는 선수단의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나는 원칙주의자다. 솔직히 이야기 하고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선수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성공이라는 기준에 따라서 태도가 달라진다면 그건 올바른 선수가 아니다.'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어떤 가치를 품고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를 선수들에게 전했다"고 했다.

마지막 경기였던 챔피언 결정 2차전. 김 감독은 다시 한번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가 올해 9번을 졌다. 선수들에게 '9번 진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냐'고 물었다. 과연 9번 진 팀이 잘한 것일까. 내가 볼때는 우리에게 더 겸허한 자세를 요구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낮은 자세로 임해야 더 큰 힘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9일 마지막 홈경기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 울산현대미포조선 선수들은 눈에 독기를 품었다. 뛰고 또 뛰었다. 후반 10분 선제골을 내줬지만 22분 동점골을 터뜨렸다. 경기 후 김 감독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의 마지막 우승.

경기 전 씁쓸한 분위기가 그를 감쌌지만 그래도 우승의 기쁨은 달콤했다. 하지만 희열이 지나간 자리에는 또 다시 아쉬움의 어둠이 찾아왔다. 김 감독은 경기 후 내셔널리그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했다. "승강제의 과도기 속 내셔널리그의 소임을 다 했으면 자연적으로 없어지는게 맞다. 그런데 어떻게 마무리지을지도 중요하다. 승강제에 완전히 치우쳐서 강압적으로 변할때 축구인이 느껴야 하는 고통이 클 수 밖에 없다. 좋은 옷감이라고 해도 몸에 맞아야 한다. 감수해야할 부분이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다."


선수들의 거취는 김 감독이 가장 아픈 부분이다. 14명의 선수들은 안산 시민구단으로 가지만, 아직 8명의 선수들은 거취가 결정되지 않았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이 고맙기만 하다. 김 감독은 "선수들도 본인의 거취를 알고 있다. 젊은 혈기에 나는 왜 좋은데로 못가냐고 생각하면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착하다. 마지막까지 분위기를 깨지 않고 팀을 위해 헌신해줬다. 그 부분이 참 고맙다"고 했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이란 이름은 없어지만 축구는 계속 된다. 김 감독은 자기 품을 떠나 험한 세상으로 떠나는 제자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건냈다. "훈련할 때는 엄하게 한다. 욕도 하기도 하고…. 그라운드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만은 않다. 치열하다. 축구선수로 살아남으려면 그 치열함을 견뎌야 한다. 동정은 필요없다. 우리 세대가 강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금 선수들은 나약하다. 칭찬이 중요하지만 때론 독이 되고 성장에 저해가 되는 요소도 많다. 적절한 질책을 받는 것도 유익하다. 챌린지 혹은 다른 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한단계 더 성장해야 한다."

트로피를 들어올린 김 감독과 울산현대미포조선 선수단은 눈물처럼 쏟아지는 종이꽃가루 아래서 환하게 웃으며 축구사에 남을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이별과 새로운 출발이 교차하는 순간. 헤어짐의 눈물처럼 뿌옇게 흐려진 울산현대미포조선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강릉=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제37회 청룡영화상,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