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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전주월드컵구장. K리그 최종전 종료 휘슬이 울렸다. FC서울에게 역전 우승을 내주는 순간, 90분 혈투 속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전북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벤치에 있던 코치진들도 할 말을 잃었다. 정장 웃옷을 벗고 푸른색 셔츠만 입고 서 있던 최강희 감독은 통한의 그라운드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주장 권순태는 K리그 준우승 시상식대에 오르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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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의 화두는 기다림이었다. 한 달여의 중동 동계 전지훈련만으로는 조직력을 완성시킬 수 없었다. 최강희 감독이 최강이었다고 자부하는 2011년과 비교해도 전력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지만 경기력은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관심을 모았던 이동국-김신욱 투톱 실험도 실패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 감독은 시간을 믿었다. 경기력이 정상 궤도로 올라올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K리그 3연패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이란 확실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선수단의 분위기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서말의 구슬' 스타들이 자존심을 내려놓으면서 '꿰어진 보배'로 하나가 됐다.
불미스런 사건, 더 똘똘 뭉쳤다
지난 5월, 전북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스카우트의 심판 매수 의혹. 2013년 발생한 사건이었고, 스카우트 개인사일 뿐이란 시각도 있었지만 비난의 화살은 2016 전북을 향했다. 서서히 끓어오르던 선수단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사태였다. 선수들은 죄인이라도 된 듯 이겨도 크게 웃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더 똘똘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주장 권순태를 중심으로 서른 일곱의 스트라이커 이동국의 지원사격을 통해 선수단은 위기를 헤쳐나갔다. 시즌 초반부터 1위를 줄곧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다. 지난 9월 말, 승점 9점 삭감의 후폭풍도 선수들 스스로 견뎌냈다. 스플릿 시스템이 가동된 뒤 3경기 연속 무승 부진에 빠졌지만 마지막 2연승으로 서울과의 우승경쟁을 K리그 최종전으로 끌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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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채워지지 않은 2%
최 감독은 유독 노장 선수들을 선호한다. 노장 선수들이 젊은 선수들과 주전경쟁을 펼칠 때 비슷한 조건이면 노장을 택한다. "너도 훗날 베테랑이 되면 이해할거야." 최 감독이 젊은 선수들을 이해시킬 때 하는 말이다. 이렇게 많은 노장들을 데리고 시즌을 치르는 건 도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베테랑들은 최 감독의 '닥공(닥치고 공격)'을 잘 수행한다. 특히 "홈에선 절대적으로 공격 축구를 구사해야 한다"는 최 감독의 소신을 가장 잘 수행해왔다. 6일 서울과의 K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전북은 13승4무1패를 기록했다. 홈 승률이 무려 83.3%에 달했다. 이날도 최 감독은 어김없이 '닥공'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최 감독의 전략은 먹히지 않았다. 최 감독은 "우리는 1년 내내 힘들게 왔다. 이날 패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씁쓸한 웃음을 보인채 퇴장했다. 이날 패배는 과연 전북의 미래에 약이 될까. ACL 결승을 앞둔 최 감독은 "이 패배로 영향은 있겠지만 경험 많은 선수들이고 비중 있는 ACL 결승이기에 다시 준비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전주=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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