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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 골짜기 세대의 반란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6-07-18 17:56



2012년 런던올림픽은 새로운 물줄기였다.

이전까지 올림픽 축구는 늘 눈물이었다. 최고 성적이 8강이었다. 메달밭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세계의 벽은 높았다', 패배주의가 가득했다. 반면 숙명의 라이벌인 일본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축구의 멍에였다.

런던에서 역사를 바꿨다. 홍명보 감독이 이끈 올림픽대표팀은 8강에서 개최국이자 축구종가 영국과 만나 120분 연장 혈투 끝에 1대1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하며 사상 첫 4강 진출을 달성했다.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는 부상 선수의 속출로 0대3으로 완패했지만 숙적 일본과의 3~4위전에서 2대0으로 승리하며 올림픽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의 시간이 흘렀다. 한국 축구는 다시 올림픽 문을 열었다. 올초 세계 최초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일궈냈다. 그리고 결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선수들을 이끌고 18일 브라질을 향해 출국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신태용호는 조별리그에서 멕시코, 독일, 피지와 함께 C조에 포진해 있다. 8월 5일(이하 한국시각)과 8일 사우바도르에서 피지, 독일과 1, 2차전을 치른 후 11일 브라질리아에서 멕시코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갖는다.

동전의 양면이다. 런던의 환희는 리우 세대에는 족쇄다. 그들에게 붙여진 오명은 '골짜기 세대'다. 런던 대회에 비해 실력과 이름값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그들도 안다. "2012년 멤버와 비교하면 분명 부족함이 있다. 선수들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신 감독의 쓴웃음이다.

하지만 그들 나름의 '골짜기 정신'이 있다. "그동안 아픔도 많고 쓴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더 강해졌다. 독기를 품고 죽어라 뛸 것이다." 누구의 말일까. 아쉽지만 출국 직전인 16일 부상 암초를 만나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한 송주훈(22·미토 홀리호크)의 출사표였다. 그는 16일 소속팀 리그 경기에서 왼쪽 발가락이 골절됐다. 송주훈은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은 신태용호 내부에 흐르고 있는 뜨거운 전류다.

런던과 비교해 리우는 분명 다른 세대다. 런던 대회의 경우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올림픽의 가장 큰 메리트는 역시 '병역 특례'다. 그러나 '병역'이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금기어'는 아니지만 워낙 민감한 단어라 자칫 화를 부를 수도 있어 최대한 자제했다.

리우 세대는 런던을 뛰어 넘었다. 동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선 선배들을 봤다. 학습효과는 컸다. 패배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더 밝고, 더 솔직해졌다. '병역 특례'도 더 이상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니다. 그 꿈을 숨기지 않는다. 골키퍼 김동준(22·성남)은 "솔직하게 말해 군면제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최종엔트리에 턱걸이 한 박동진(22·광주)도 "좀 불안불안했는데 (이)찬동이 형이 옆에서 갈 수 있다고 했다. 좋은 성적을 내 군대 해결하고 오자고 손 잡으면서 이야기했다"며 웃었다.


시각에 따라 '병역 특례'는 특권일 수 있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에게는 현실적으로 가장 큰 동기부여다. '골짜기 세대'도 메달을 딸 수 있다는 것을 검증받고 싶어하는 눈치다. 신 감독도 "선수들이 오히려 더 똘똘 뭉친다. 이런 분위기라면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태극전사들도 마찬가지다. 목표를 묻는 질문에 동메달은 기본이고, 결승 진출도 이야기한다. 이찬동(23·광주)은 "짠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몸 던지고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형들보다 하나 더 해서 은메달 이상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했다. 구성윤(22·곤사도레 삿포로)은 "메달을 따러 가는 것이 목표지만 꿈은 커야 한다. 목표는 금메달"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권창훈(22·수원)도 "브라질에 놀러가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이 마음 속으로 강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좋은 활약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비교돼서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리우 세대도 마찬가지다. 선택지는 없다. 그들은 더 높은 이상으로 무장해 정면돌파를 할 계획이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 그들의 혼이자 정신이다. '골짜기 세대'의 끝이 기적으로 이어진다면 한국 축구는 또 다른 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다. 후회없는 승부와 함께 올림픽을 즐기기를 바란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8월 브라질에서 펼쳐질 '골짜기 세대'의 화려한 반란을 기대해 본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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