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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났다."
권한진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다. 단 한번도 K리그에서 뛴 적이 없었다. 어떤 축구인생을 살아왔을까.
한 때 유망한 미드필더였다. 권한진은 "어렸을 때 미드필더로 많이 뛰었다"고 말했다. 마산공고 시절 중원의 핵이었다. 변수가 생겼다. 1년에 키가 10cm 이상 자랐다. 권한진은 "갑자기 키가 컸다. 성장과 동시에 내 플레이가 애매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조 감독은 당시 마산공고 코치였다. 조 감독의 지도 아래 한층 성장했다. 경희대에 진학했다. 또 한차례 변화가 일었다. 권한진은 "대학무대에서 공격수로 뛰었다. 1년에 20골 이상 넣었다. 정우영 오재석 등 멤버가 좋았다. 전국대회 3관왕도 했다"고 말했다. 대학무대 활약으로 유니버시아드대표팀에 발탁됐다.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다. 부상이었다. 권한진은 "왼무릎 연골이 안 좋았다. 유니버시아드대표팀 대회 출국 하루 전에 팀을 나왔다. 도저히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술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수술 후 삶은 '생지옥'이었다. 권한진은 "하루에 10~11시간씩 재활에 몰두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재활을 마치고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 J리그 명문 가시와 레이솔 입단제의가 왔다.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권한진은 벤치에 머물렀다. 이후 권한진은 일본 2부 리그인 군마, 구마모토를 거쳤다. 그리고 올 겨울 제주의 부름을 받았다.
권한진은 "나는 K리그에서 무명이다. 제주에는 오반석 이우진 백동규 등 이름있는 선수들이 있다"면서도 "나도 내 장점을 살릴 것이다. 어느 팀에 가도 경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팀의 성공이다. 그는 "경쟁에 연연하지 않겠다. 팀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몸을 던질 각오가 돼있다. 제주가 리그 우승,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루는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다짐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