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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김도훈 감독(45)은 성공적인 데뷔 첫 시즌을 보냈다.
이런 성공 이면은 한 편의 드라마다. 시즌 대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설움받던 선수들로 '외인구단'을 꾸려 '늑대축구' 대명사를 각인시켰다.
김 감독은 연출자로 때로는 주인공, 보조스태프로 1인 다역을 소화하며 드마라를 완성했다. 모든 드라마에는 '희로애락' 세상사가 함축돼있게 마련이다.
'늑대감독' 김도훈에게도 그랬다. 한 시즌 동안 그가 겪었던 뒷이야기를 '희·로·애·락' 키워드로 들어봤다. 서울 양재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너무 빨리 끝난" 2015년 시즌이 아직 아쉬운 모습이었다.
올 시즌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묻자 감독 데뷔 첫승과 FA컵 결승 진출을 놓고 잠깐 망설였다. 결론은 FA컵 결승 진출이다. 결과물 때문만은 아니다. "4강 이상 가자고 목표는 잡았지만 모두 반신반의했다. 사실 나도 그랬다. 4-4-2 포메이션에 익숙해진 선수들에게 4-3-3, 4-1-4-1을 적용하자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일단 해보자'고 했다. '해보자'는 구호에 선수들이 점차 갖춰지는 모습이 보였고 결승 진출로 이어졌다. 치열한 내부 경쟁으로 불안했을 선수들에게 미안하지만 쉽게 지지 않는 전력으로 성장한 게 무엇보다 기쁘다." FA컵 준결승을 앞두고 선수단 미팅 비하인드 스토리도 소개했다. "우리 앞에 커다란 벽이 있다. 지름길이 뭘까?"라고 물었다. '넘어가자', '돌아가자' 등 여러 답변이 나왔다. 김 감독이 생각한 정답은 따로 있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있나? 확 깨부수고 가면 되지." 인천 선수들은 그렇게 밀고 나가 결승에 성공했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득점왕, MVP 등 숱한 상을 받았다. 감독이 돼서 일군 FA컵 준우승과는 희열의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선수 때 상 받으면 나 자신만 좋았다. 지금은 팀 모두가 좋아하더라.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었다는 것에 다른 묘한 희열을 느꼈다." 가장 기분좋은 덕담은 눈가에 이슬이 맺힌 아내가 해 준 "고생했어요"였단다.
노(怒)='나에게 화가 나 잠을 못잤다"
김 감독은 가장 크게 화를 낸 적이 한 번 있다고 했다. 지난 5월 23일 전북과의 12라운드(0대1 패)가 끝나고 난 뒤다. 당시 3연승 중이던 인천은 5분 만에 상대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를 점했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최고의 몸상태라고 믿고 기용했는데 그렇게 꼬리 내릴거면 뭣하러 축구하느냐. 다 때려치우고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 최강 전북의 기에 눌려 힘 한 번 못쓰고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김 감독은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선수들은 가끔 흐트러지게 마련인데 이를 미연에 방지못한 것 같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의욕만 앞섰던 자신을 생각하니 몸에 열이 나고 잠을 한숨도 청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날의 '노(怒)'는 전화위복이 됐다. 전북과의 세 번째 맞대결에서 1대0으로 승리했다. 김 감독은 "'다음에는 전북도 이길 수 있다고 믿자. 누가 그러던데 교도소에 들어가면 이왕 싸우더라도 잔챙이보다 1인자하고 싸워야 최소 2인자는 된다더라. 1강 전북과 싸워 이기면 우리도 1등아니냐'고 독려했더니 진짜 이기더라"며 이젠 웃었다.
애(哀)='조수혁 때문에 울었던 진짜 이유는…"
김 감독에게 안타까운 일은 제법 많았다. 공교롭게 모두 선수들 때문이다. 주장 골키퍼 유 현과 조수혁(GK) 김인성(MF)이 다쳤을 때 가슴이 찢어졌다고 한다. 유 현은 시즌 초반이던 4월 서울전에서 어깨를 다쳤고 조수혁은 33라운드 성남전(10월)에서, 김인성은 FA컵 결승을 준비하던 중 각각 부상했다. 이들 부상이 유독 안타까웠던 이유는 그 선수들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해 왔는지 알기 때문이란다. 특히 마음에 걸린 이는 조수혁이었다. 김 감독은 33라운드 패배로 그룹A가 무산된 뒤 기자회견 도중 오열했을 때 "조수혁이 울던 모습이 떠올라서"라고 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수혁이는 8년간 벤치 설움을 겪다가 이제서야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그토록 간절하게 준비한 게 한순간 부상에 막혔다. 나의 데뷔 시절 생각이 났다. 초반부터 골도 넣고 잘나갔는데 정강이뼈 부상으로 신인왕도 놓치고 좌절했던 적이 있었다."
락(樂)='제가 함께하고 싶은 감독이라구요?"
기-승-전-'락'이다. 만감이 교차한 순간이 많았지만 인천에서의 첫 시즌 모두가 즐거웠다. "11년간 코치를 했다. 코치라면 모두가 감독이 되기 위해 준비하지 않는가.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고 선수들의 좋은 점을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그렇게 긍정 마인드로 달려오니 또다른 즐거움도 겹쳤다. 한 축구전문잡지가 K리그 선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기대 이상의 팀=인천', '화합이 잘 된 팀=인천', '같이 해보고 싶은 감독=김도훈'이라는 결과가 나왔단다. 김 감독은 "올 시즌 선수단의 출전 강령은 감히 페이스 조절하지 말고 시작부터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죽어라 뛰고 다음 선수를 투입하는 것이었다. 누구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버릇을 심어줬고, 생갭다 빨리 선수들이 적응해줘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4일 스페인 등 유럽 선진축구를 배우러 출국한다. 내년 시즌 새로 개봉할 '희로애락' 드라마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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