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PBBNews = News1 |
|
'9번' 실종의 시대다.
9번은 정통 스트라이커를 의미한다.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골만 넣으면 됐다. 과거 스트라이커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었다. 축구가 골로 말하는 스포츠인만큼 너무나 당연했다. 축구 스타의 계보는 공격수 계보와 맥을 같이 했다. 하지만 수비 전술의 발달과 함께 스트라이커의 역할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과거 같이 골만 넣을 줄 아는 공격수는 설자리를 잃었다. 압박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며 이를 벗어날 수 있는 탈압박 능력이 공격수들에게도 강조되기 시작했다. 스피드는 물론 패스까지 갖춘 만능형 공격수가 빛나기 시작했다. 루이스 수아레스(바르셀로나),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 등이 대표적이다. 아예 스트라이커가 없는 '제로톱'까지 등장했다. '제로톱'은 전문 공격수가 없는 전술을 말한다. '세계 최고의 선수'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 '가짜 9번(제로톱의 전방)' 전술이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의미의 스트라이커들은 전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진짜 9번'은 '가짜 9번'에 비해 결정력이 더 뛰어나다. 전문 9번 못지 않은 결정력을 갖고 있는 메시는 말그대로 '돌연변이'다. 또 강력한 포스트플레이는 롱볼이라는 또 다른 옵션을 제공한다. 9번의 부재는 각국의 고민거리가 된지 오래다. 대표적인 팀이 브라질과 독일이다. 공격수의 천국이었던 브라질은 호나우두의 은퇴 이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대참사를 낳았던 브라질월드컵에서도 브라질 대표팀의 최대 약점은 믿을만한 9번의 부재였다. 상대 수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스트라이커가 없었던 브라질은 '에이스' 네이마르(바르셀로나)마저 부상으로 빠지자 평범한 팀으로 전락했다. 둥가 체제로 전환했지만, 브라질의 고민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월드 챔피언'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이번 유로2016 예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풍부한 2선 자원에 비해 빈약했던 최전방 때문이었다. 과거 독일은 게르트 뮐러, 위르겐 클린스만, 올리버 비어호프 등과 같은 해결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다할 공격수가 없는 지금 마리오 괴체(바이에른 뮌헨)를 '가짜 9번'으로 활용한 제로톱 전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제로톱 전술의 시작은 '페널티박스에 들어가는 선수는 누구든 공격수가 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그 과정에서 주목을 받은 것이 이른바 '가짜 7번'이었다. 7번은 측면 공격수를 상징하는 등번호다. 과거 윙어들은 터치라인을 따라 움직이며 스트라이커들의 골을 돕는데 역량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최근의 윙어들은 도우미라기 보다는 해결사에 가깝다. '가짜 7번'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하며 골을 만드는 전술을 말한다. '메시의 영원한 라이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 등이 대표적인 '가짜 7번'이다. '가짜 7번'이 득세하며 '진짜 9번'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감독들은 '가짜 7번'을 살리기 위해 폭 넓은 움직임과 패스에 강점을 보이는 공격수에 집중했다. 아예 '9번'과 '10번(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사이를 오가는 '9.5번'형 공격수까지 등장했다.
그렇다면 '9번이 죽게 된 것이 윙어 때문이라면, 9번을 살릴 수 있는 것도 윙어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최근 바이에른 뮌헨이 보여주고 있는 전술이 힌트가 될 수 있겠다. 바이에른 뮌헨은 올 시즌에도 변함없는 경기력으로 독일 분데스리가를 질주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로베리'라고 불리는 로번과 프랑크 리베리, 두 에이스 없이 이뤄낸 결과라는 점이다. 로번과 리베리는 '가짜 7번'의 대표주자들이다. '전술가'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들이 부상으로 제외되자 아예 역으로 윙어들에게 전통적인 역할을 부여했다. 크로스를 강조한 것이다. 이 전술의 혜택을 본 선수가 바로 최근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다. 최근 레반도프스키의 득점력은 메시와 호날두를 능가한다. 8라운드 기준으로 12골을 넣었다. 9월 볼프스부르크전에서는 9분만에 5골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리그 뿐만이 아니다. 폴란드 대표팀에서도 12골을 넣으며 유로2016 예선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유럽챔피언스리그도 골폭풍을 이어가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 이적 후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레반도프스키는 측면 윙어들이 골기회를 만들어주자 득점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더글라스 코스타와 킹슬리 코망은 좌우 터치라인을 따라 움직이며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고 있다. 특히 코스타는 분데스리가 데뷔 후 매경기 도움이라는 진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뛰어난 연계력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레반도프스키는 기본적으로 골잡이다. 레반도프스키는 이번 시즌 득점령 상승 요인에 대해 "코스타와 코망 가세 덕에 크로스가 많아졌다. 당연히 토마스 뮐러와 내가 가까운 위치에서 뛸 수 있게 됐다. 뮐러가 처진 공격수처럼 뛰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기회도 늘어났다"고 설명한 바 있다. 9번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전술의 개발, 어쩌면 9번 부재의 시대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루트가 아닐까.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new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