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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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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 제주 감독은 '탓'을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다. 제주는 잠잠한 겨울이적시장을 보냈다. 프로 감독으로 첫 시즌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는 욕심을 낼 법도 했지만, 구단의 사정을 이해했다. 구단 '탓'을 하는 대신 기존의 선수들을 믿었다. 지금도 조 감독이 가장 데려오고 싶은 선수는 K리그의 특급 스타들이 아니라 제주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다 군대를 간 배일환이다. 조 감독의 믿음은 선수들을 바꿨다. 윤빛가람의 부활이 대표적이다. 침체기를 걸었던 윤빛가람은 조 감독의 믿음 속에 예전의 모습을 찾았다. 31경기에 나서 6골-5도움을 올렸다. 개인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는 윤빛가람은 강인한 정신력까지 얻었다. 지금 제주에서 가장 많이 뛰고, 가장 몸을 날리는 선수는 윤빛가람이다. 제주의 핵심인 오반석 송진형 등은 중동에서 거액의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제주에 남았다. 자신을 믿어준 조 감독에 보답하기 위해서 였다.
잘 나가던 제주는 시즌 중반 침체기를 겪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선수들이 쓰러졌다. 베스트11 중 부상자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선수가 없었다. 야심차게 영입한 브라질 출신 공격수 까랑가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강수일이 도핑파문에 이어 음주운전으로 영구제명됐다. 하지만 조 감독은 한번도 선수 '탓'을 하지 않았다. 대신 뒤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는 신예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전북전에서 2골을 넣은 김상원이 대표적이다. 조 감독은 어두컴컴한 운동장에서 개인 훈련을 하던 김상원에게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준 적이 있다. 조 감독은 지도자가 되면 성실한 선수에게 우선 기회를 주겠다고 다짐했다. 조 감독 역시 선수시절 자신을 믿어준 지도자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신예들은 고비마다 경험 부족을 드러냈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 제 몫을 해줬다. 조 감독은 그런 제자들이 참 고맙다.
석연찮은 판정에도 심판 '탓'을 하지 않는다. 조 감독은 지난달 13일 울산전에서 2대2로 비긴 후 화가 많이 났다. 경기 후 항의도 많이 했다. 하지만 구단에서 제소를 준비하자 정작 이를 말렸다. 그 전에도 그랬다. 아쉬운 판정이 나와도 좀처럼 항의를 하지 않았다. 과거 경험 때문이다. 영생고를 이끌 던 시절 조 감독은 한 대회에서 두 번이나 퇴장을 당했다. 모두 판정에 항의하다 그랬다. 어느 날 다른 심판에 항의하는 지도자를 보며 정신이 들었다. 그 이후 불같은 성질이 줄어들었다. 그 뒤로는 완벽히 경기를 준비하지 못한 자기를 '탓'하게 됐다.
조 감독의 말대로 '롤러코스터' 같은 시즌이었다. 고공비행에서 추락, 다시 반전 후 마지막 33라운드에 쓴 극적인 그룹A행 드라마. 하지만 그 굴곡 속에서도 조 감독은 한결 같았다.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철학 속에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자신만의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많았다. 담배도 늘었고, 마시지도 못했던 술은 어느덧 제법 주량이 쌓였다. 그래도 조금씩 스타일이 바뀌어가는 선수들, 그토록 강조했던 승리의 의욕을 높여가는 선수들을 믿었다. 기적의 상위 스플릿행은 믿음의 결과다.
조 감독은 스스로 이번 시즌 30~40점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조 감독의 믿음 속에 성장하는 신예들과 예쁘게 볼을 차는 대신 강인한 몸싸움을 펼치는 스타일의 변화 속에 희망이 보이고 있다. 조 감독은 희박하지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에 도전할 생각이다. 실패하면 내년에 다시 도전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탓' 하지 않는 조 감독도 분명 성장하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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