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길 듯, 말 듯. 애만 태우더니 어느새 연승을 했다.
지난 1주일 동안 인천은 김도훈 감독 부임 이후 '첫승'을 잇달아 찍었다. 29일 FA컵 32강전 부천FC와의 경기(2대0 승)에서는 김 감독의 부임 첫승을, 3일 K리그 클래식 대전전(2대1 승)서는 K리그 데뷔 첫승을 기록했다.
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승리를 할 자격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전 4연속 무승부를 하는 동안 경기 내용에서 커다란 문제는 없었다. 인천의 객관적 전력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결과와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랬던 인천이 FA컵 32강전에서 비로소 이길 줄 아는 '맛'을 보더니 클래식까지 상승세를 이어가는데 성공했다. 올 시즌 12개팀 가운데 가장 피말리게 첫승을 건진 인천. 그 이면에는 숨은 원동력들이 있었다.
김 감독은 경기 직전까지 라커룸에서 노트북 '열공'을 한다. 지난 3일 대전 원정에서도 선수들이 보지 않는 감독실에서 경기 대비책 데이터가 담긴 노트북을 켜놓고 수첩에 뭔가 열심히 적었다. 김 감독은 "구상이 여러 번 바뀌기도 하고 혹시 빠뜨린 게 없는지 마지막까지 체크해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전형적인 새내기 감독의 모습이다. 하지만 선수들 앞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선수 출신답게 초연하다. 일부러 그렇게 해야 했다. 김 감독은 그동안 선수들에게 '첫승'을 하자고 닦달하지 못했다. 초보 감독 입장에서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행여 선수들에게 부담될까봐 숨기고 있었단다. 그냥 믿고 기다리는 배려가 선수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겨울 동계훈련 동안 죽도록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을 잊지 말자고 했다. 주장 유 현(GK)이 "선수생활하면서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한 적은 없었다"고 평가했던 그 동계훈련말이다. '고진감래'라고 고생한 만큼 언젠가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주고 싶었던 게다. 용병 공격수 케빈이 의욕이 앞선 나머지 골을 넣지 못한 것에 조급해 하는 모습을 보일 때 따로 불러 면담을 했다. "너의 심정 내가 더 잘 안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 평정심을 찾는 게 중요하다." 케빈은 FA컵 32강전에서 마침내 골을 터뜨리며 김 감독의 기다림에 화답했다.
'믿음'에 화답하기 시작한 선수들
도둑질도 손 발이 맞아야 하는 법이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몸으로 응답을 해줘야 믿음을 준 보람이 있다. 선참 이천수(34)부터 모범을 보였다. 올 시즌 9경기 모두 출전한 이천수는 최근 5경기 연속 선발로 나와 게임 메이커 역할은 물론 보기에 안쓰러운 정도로 후배들보다 더 뛰었다. 김 감독은 이천수가 지쳐 스스로 사인을 보낼 때까지 평균 60∼70분을 믿고 맡겼다. 김 감독은 요즘 이천수가 그라운드에서 펼치는 보이지 않는 희생에 대해 빼놓지 않고 칭찬한다. 만년 2인자들도 팀내 보이지 않는 활력소가 되며 김 감독을 흐뭇하게 만든다. 골키퍼 조수혁(28)은 프로 데뷔 7년차지만 만년 2인자였다. 간판 GK 유 현이 부상으로 빠지자 6경기(FA컵 포함)에 대신 출전해 무패 행진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혹시나' 했던 감독에게 행복한 고민을 안겨준 것이다. 중앙 수비수 김진환(26)은 조수혁과 마찬가지로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지난달 25일 포항전에서 어렵게 선발 기회를 잡아 골을 터뜨리더니 29일 FA컵에서도 연속골을 터뜨리며 한 번 믿어준 감독에게 제대로 보답했다. 특히 2골 모두 세트피스 헤딩골이어서 인천의 새로운 '히든카드'에 합류했다. 포항전에서 생애 첫골을 터뜨린 뒤 "다음엔 김 감독께 첫승을 안겨드리고 싶다"고 했던 김진환은 곧 이어진 FA컵에서 약속을 지키기도 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