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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요? '내 뒤에 공은 없다'죠. 하하."
J리그 요코하마에 미우라가 있다면 K리그 전남에는 김병지가 있다. 백전노장 김병지에겐 '안티팬'도 힘이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나이 들었으니 후배들에게 물려주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다. 개인적으로 안티팬이나, 불만을 가진 분들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하니까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더 긴장해야 한다.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 불평하는 분들에게, 나이 들었으니 물러나라는 분들에게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프로다."
김병지의 길은 '선수 생명연장'의 꿈을 지닌 후배 골키퍼들에게도 길이 된다. 김병지의 목표는 또렷했다. "젊을 때는 국가대표가 꿈이지만 서른살을 넘은 정성룡, 김용대, 권순태 등 후배들의 꿈은 '오래 잘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후배들을 위해 더 버텨줘야 한다"며 웃었다. 후배들의 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길을 열어준다는 뜻이다. "이 나이에 축구를 하려면 솔직히 쉽지 않다. 휴식은 오직 시즌 후인 연말뿐이다. 휴식도 훈련을 위한 휴식이고, 쉴 때도 운동한다. 가려져 있는 열정을 증명할 수 있는 자리는 오직 운동장뿐"이라고 했다.
5위 전남(1승3무)은 올시즌 4경기에서 무패, 단 1골만을 허용했다. 2위 전북과 함께 리그 최소 실점이다. 지난해 리그 최다실점을 기록한 전남의 드라마틱한 변화다. 매경기 이어지는 김병지의 폭풍 선방은 큰힘이 됐다. 김병지는 후배들에게 공을 돌렸다. "동료들이 잘해주고 있다. 덕분에 자신감도 생기고 나까지 시너지가 나는 것"이라고 했다. 수비라인의 변화에 대해 "동계훈련부터 수비 조직력 훈련을 강조했다. 상대에 따른 맞춤형 준비가 잘됐다"고 분석했다. "우리는 늘 실점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11명이 모두 함께 수비하고 11명 모두 함께 공격한다"고 했다. 새로운 선수들이 제 역할을 해내면서 선수층도 두터워졌다. 김병지는 "들어오는 선수마다 제 역할을 해내버린다. 새로 들어온 (최)효진이, 센터백 (김)동철이도 잘해주고 있다. 인천전 미드필더 정석민 카드는 인상적이었다. 생갭다 너무 잘했다. 또 하나의 패를 쥐게 됐다. K리그 어느 구단과 맞서도 밀리지 않는다는 경쟁력,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팀내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부상했던 주전 센터백 임종은이 들어올 틈을 못찾을 정도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고민일 것 같다"며 웃었다.
'필드코치' 김병지는 3연승, 3위를 달리고 있는 수원과의 4라운드를 냉정하게 바라봤다."수원전은 승점 3점 이상이다. 수원이 좋은 흐름이고 순위도 우리보다 앞선다. 전남의 올시즌 방향성을 가늠할 일전이다. 선수들의 동기부여, 시즌 전체에 대한 시선이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일전"이라고 강조했다. 수원은 올시즌 4경기에서 슈팅 44개, 유효슈팅 28개를 기록했다. 유효슈팅률이 0.64%로, 서울(슈팅 33개, 유효슈팅 22개, 0.67%)에 이어 전체 2위다. 전남은 슈팅 51개, 유효슈팅 26개로, 0.51% 전체 3위다. 김병지가 자신있게 말했다. "나는 후배들을 믿는다. 상대의 유효슈팅이 많다면 내가 막아줘야 한다. 그래야 후배들이 득점하는 힘이 생긴다. 내 뒤에 공은 없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