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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축구는 고개를 숙였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K리그는 또 위기였다.
'이승우 신드롬'의 출발점은 지난해 9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2014년 아시아축구연맹 U-16 챔피언십이었다. 풍문으로만 듣던 이승우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대회였다. 이승우는 놀라운 개인기량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일본과의 8강전에서 보여준 50m 드리블골은 '메시 빙의' 골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승우의 개인기량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이천수 정조국 박주영 등 지난 십여년간 등장한 한국의 젊은 공격수들은 하나같이 아시아 무대를 정복했다. '기존의 공격수들과 어떻게 달랐나'를 따져봐야 한다.
이승우의 가장 큰 장점은 터치다. 영국 축구계에는 '퍼스트 터치를 잘하면 1000만파운드 선수'라는 말이 있다. 수비전술의 발달로 공간이 줄어든 현대축구에서 공격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 첫번째 터치다. 어떻게 첫번째 터치를 하느냐에 따라 슈팅까지 연결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이승우의 퍼스트 터치는 항상 골문을 향한다. 첫번째 터치는 단순한 개인기가 아니다.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다. 습득이 아니라 타고나야 한다는 얘기다. 이승우는 슈팅까지 이어질 수 있는 최단루트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승우, 과연 기대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
이승우의 별명은 '제2의 메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와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메시는 펠레나 디에고 마라도나와 비견되는 선수다. 축구역사를 통틀어도 메시 같은 선수는 10명이 되지 않는다. 일단 이승우는 바르셀로나 1군에 진입하는 것이 먼저다. 다행히 이승우는 바르셀로나에서도 최고 수준의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다. 이승우는 바르셀로나 후베닐A(유소년팀 중 가장 높은 단계)에 소속된 유일한 1998년생 선수다. 세계 최고 유소년 시스템을 지닌 바르셀로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건 전세계 1998년생 중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후다. 보얀 크르키치(스토크시티)가 좋은 예다. 보얀은 유스팀 시절 메시를 능가하는 재목으로 평가받던 유망주였다. 유스팀에서 1년에만 100골이 넘는 득점포를 쏘아올렸다. 1990년생 천재 공격수는 2006년 만 16세 나이에 바르셀로나B팀에 데뷔했고 이듬해인 2007년에는 만 17세의 나이로 바르셀로나 1군에 공식 데뷔했다. 메시가 보유했던 바르셀로나 최연소 데뷔 기록을 깼다. 데뷔시즌에만 리그에서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며 라울이 보유하던 데뷔 시즌 최다골도 넘었다. 탄탄대로를 걸을 것처럼 보였던 보얀은 이 후 부진을 거듭하며 매년 소속팀을 바꿔가는 그저그런 선수로 전락했다.
물론 보얀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선천적인 재능은 비슷하지만, 스타일 자체는 이승우가 현대축구와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승우는 한마디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선수다. 현대축구가 공격수에 요구하는 모든 덕목을 갖췄다. 유스 무대에서는 한두가지 재능만으로 살수 있지만 성인무대는 다르다. 그런 측면에서 슈팅, 패스, 드리블, 스피드까지 갖춘 이승우는 어느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유형의 선수다.
이승우,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
물론 고쳐야 할 점도 많다. 이승우는 볼을 잡기 전 움직임이 좋지 않다. 이승우는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사실상 고립된 모습이었다. 북한 수비수들은 이승우가 아예 볼을 잡지 못하게 앞선에서 수비를 펼쳤다. 이럴 경우 수비수들을 미드필드로 끌고나와 북한 수비진을 흔들어줘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볼을 잡으면 위협적이었지만, 볼을 받기 위한 준비자세는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이승우의 위치는 '가짜 9번(제로톱)'이나 공격형 미드필더가 유력하다. 2선과 최전방을 오가는 다양한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괴롭혀야 한다. 이승우에게 필요한 움직임이다.
지난해 12월31일(한국시각) 국제스포츠재판소(CAS)는 유소년 이적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바르셀로나의 항소를 기각한 것도 악재다. 이 결과 이승우는 2016년까지 클럽 공식경기에 나설 수 없다. 바르셀로나는 이승우에게 여러 친선경기를 통해 경험을 쌓게 하고 있지만, 친선경기와 실전은 다르다.
일단 이승우는 여러모로 선배들보다 특별한 위치에 있다. 연령별 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주목을 받게 되는 선수는 자신의 위치를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1군이라는 현실적 목표가 있는 이승우는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통해 얻은 만족감에 젖어 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이승우는 이전에 천재 칭호를 받아온 한국의 다른 '천재 공격수'들과는 다른 여건에 놓여있다. 적어도 나태해지거나, 거만해질 여유가 없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을 꿈꾸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그만큼 이승우는 아직 어리다. 올해가 이승우의 미래에 힌트가 될 수 있다. 메시와 보얀은 이승우와 같은 17세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데뷔했다.
이승우와 같은 연령대의 최고수들이 출전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이 10월 칠레에서 열린다. 이승우는 과연 다시 한번 우리를 열광시킬 수 있을까.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