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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종호가 28년 만의 꼬인 매듭을 풀었다. 인천 문학경기장이 "대~한민국"으로 메아리쳤다.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는 2002년 부산 대회부터 23세 이하로 연령 제한이 생겼다. 3장의 와일드카드가 동시에 도입됐다. 첫 시작은 이운재 이영표 김영철이었다. 이운재와 이영표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다. 기대가 컸다. 홈이점을 앞세워 순항했다. 그러나 4강에서 와일드카드가 고개를 숙였다. 이란과의 연장혈투 끝에 득점없이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3-5로 패했다. 이운재는 승부차기에서 단 한 차례 선방도 없었고, 두 번째 키커로 나선 이영표는 실축했다.
2006년 도하에선 이천수 김두현 김동진, 2010년 광저우에선 박주영 김정우가 와일드카드로 발탁됐지만 매듭을 푸는 데 실패했다. 와일드카드는 어린 선수들의 기댈 언덕이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그들의 고충이다. 말 못할 부담감은 헤어나올 수 없는 덫이었다.
인천아시안게임 반전 무대였다. 나이를 버렸다. 희생과 솔선수범은 그들의 키워드였다. 최전방에는 김신욱, 중원에는 박주호, 골문에는 김승규가 버티고 있다. 박주호는 단 한 경기도 그르지 않고 수비형 미드필더에 포진, 공수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홍콩과의 16강전(3대0 승)에선 환상적인 중거리포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돼 라오스와의 조별리그 최종전(2대0 승)을 건너 뛴 김승규는 선발 출전한 6경기에서 모두 무실점을 자랑했다. 일본과의 8강, 태국과의 4강,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몸을 날리는 슈퍼 세이브로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1m98의 고공폭격기 김신욱도 금빛사냥에 일조했다. 북한전 연장후반 투입되어 막판 공세에 일조했다. 결국 연장 후반 15분 임창우의 버저비터골에 일조하면서 제 역할을 마무리 했다.
김신욱과 박주호, 김승규에게도 '인생의 대회'였다. 후회없는 대반전이었다.
인천=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