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이었다. 김성수 17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골키퍼 코치(51)는 울산 유스팀인 현대중 수문장이었던 김승규(24)를 처음 봤다. 무한한 잠재력을 느꼈다. "17세 이하 대표팀이 프로축구 울산 클럽하우스로 합숙을 떠났는데 당시 울산 유소년 스카우터가 승규를 추천하더라. 그 때는 이희성이 동급 최고의 골키퍼였다. 그런데 승규를 훈련시켜보니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더라." 보물을 얻은 느낌이었다. 한국 최고의 골키퍼로 성장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원석을 다듬기 시작했다. 김 코치는 "신체조건이 좋더라. 특히 발 기술이 여느 필드 플레이어 못지 않더라.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17세 이하 대표팀에 발탁해 1년 간 훈련을 시켰다"고 설명했다. 김승규와 김 코치의 운명적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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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코치는 "상대 팀에 따라 주문하는 것이 틀리지만, '기본을 잊지마라'고 강조했다. 경기할 때는 공의 위치에 따라 위치선정을 많이 얘기했다"고 했다. 더불어 "'서두르지 마라'고 했다. 구렁이를 5마리 먹은 능구렁이가 되라고 했다. 필드 선수들에게 김승규 플레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쉬운 볼일수록 기본을 지켜라'고 했다"며 추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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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는 '잠깐'이었다. 2012년, 김승규의 자리는 여전히 백업이었다. 김 코치는 고민에 빠졌다. 주전 김영광이 잘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승규의 출전도 챙겨야 했다. 런던올림픽대표팀 멤버로 발탁될 경우 활약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김 코치는 "승규를 올림픽대표로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범영(부산)과의 경쟁을 위해 배려를 많이 했다. 그런데 워낙 영광이의 경기력이 좋다보니 쉽게 교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암운이 드리웠다. 올림픽 직전 새끼손가락 골절 부상을 했다. 깁스만 6개월했고, 복귀하는데 8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김 코치도 '애제자'의 올림픽행 좌절에 마음속으로 울었다. 김 코치는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승규를 다시 일으켜세워야 했다. 당시 '실망하지 마라. 앞으로 기회가 많으니 치료에 전념해라'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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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김승규는 지난해 정규리그 3라운드부터 종아리 부상을 한 김영광의 공백을 메웠다. 이후 승승장구였다. '아~골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조차도 막아냈다. 김승규는 점점 김영광을 잊게 했다. 김 코치는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듯이 승규는 준비된 스타다. 때가 왔을 때 기회를 낚아챌 수 있었던 것은 완벽한 준비 덕분이었다"고 전했다. 또 "이젠 본인이 그렇게 바라던 월드컵이다. 올림픽 좌절의 한을 월드컵에서 풀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김 코치의 걱정은 김승규의 국제대회 경험 부족이다. 그래서 두둑한 배짱을 주문했다. "승규야! 이번 월드컵에선 선생님이 알려준 대범함을 활용해보렴. 너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거야."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