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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부일체]⑤손흥민을 일으켜세운 편지 한 장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4-05-16 08:13


손흥민이 어린 시절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손흥민

손흥민(레버쿠젠)이 국내 축구계에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2006년 여름이었다. 이전까지 손흥민은 정식 축구무대가 아닌 아버지 손웅정씨에게 기본기를 배웠다. 강원도 원주 육민관중학교에서 축구부 생활을 시작한 손흥민은 2008년 9월 대한축구협회의 우수선수 해외유학프로그램 6기생으로 독일 함부르크로 향할 때까지 약 2년 정도 국내에서 뛰었다. 이 2년의 기간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2년은 현재의 손흥민을 있게 한 중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함께했던 나승화 육민관중 감독 그리고 송경섭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강사에게 당시의 손흥민을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선수가 있다니

"사실 놀랐다. 이제까지 이런 선수를 몰랐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2006년 여름, 중학교 2학년 손흥민을 만난 나승화 감독의 첫 마디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멤버였던 나 감독은 육민관중을 강원도내 신흥 명문으로 만든 학원 축구계 명지도자다. 처음에 손흥민의 입학을 의뢰한 것은 아버지 손웅정씨였다. 나 감독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단다. "아버지가 축구했던 사람이기에 일단 받았다. 손웅정씨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이전까지 팀에서 축구를 한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 훈련을 하자마자 나 감독은 눈을 의심했다. 탄탄한 기본기가 돋보였다. 무엇보다도 나 감독의 눈길을 끈 것은 '스피드'였다. 나 감독은 "그냥 달릴 때보다 볼을 치고 나갈 때의 스피드가 더욱 뛰어났다. 볼 컨트롤도 대표급 선수 못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물론 팀축구는 처음이기에 어려움도 있었다. 자기 혼자만의 플레이를 하는 경향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단다. "지적한 것은 금세 고치더라"는 나 감독은 "팀에도 빠르게 녹아들었다. 무엇보다도 인성이 뛰어났다. 긍정적이고 선후배들에게 너무 잘했다. 10년 이상 홀로 볼을 찼던 손흥민이 팀축구에 빨리 녹아든 것은 그 인성 덕택일거다"라고 말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어디를 가든 축구만 생각했다. 나 감독은 "24시간 내내 축구만 생각하는 아이였다. 휴가를 보내도 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개인 훈련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 가도 춘천 공지천에서 아버지와 볼을 찼다. 그런 선수는 처음 봤다"고 했다.

손흥민에 매료된 나 감독은 2007년 전화기를 들었다. 수신자는 송 강사였다. 당시 송 강사는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17세 이하 대표팀의 수석코치였다. 2009년 청소년(17세 이하)월드컵에 나설 1992년생 선수들을 모으고 있었다. 나 감독은 자신있게 말했다. "여기 와봐. 너가 깜짝 놀랄만한 선수가 있어."


손흥민이 어린 시절.
남달랐던 '빳따'

송 강사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손흥민은 무명이었다. 12세나 14세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적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주로 향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당시 손흥민은 상당히 말랐다. 성장 중이었다. 첫번째로 주목한 것은 역시 스피드였다"고 말했다. 스피디한 드리블이 남달랐단다. "다른 선수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드리블이었다. 볼을 달고 가면서도 앞으로 쭉쭉 치고나왔다"고 했다.


스피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송 강사가 더욱 주목했던 것은 '빳따'였다. "축구인들이 쓰는 표현으로 '빳따'는 슈팅할 때의 모습을 말한다. 다리가 긴데다가 임팩트와 슈팅 타이밍이 남달랐다. 피지컬 능력은 다소 모자랐지만 잘만 키우면 1~2년 후에는 재목이 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2008년 3월 송 강사는 동북고에서 뛰던 손흥민을 16세 대표팀으로 불렀다. 가능성을 제대로 시험하고 싶었다. 맞아떨어졌다. 개인기와 기본기, 여기에 슈팅력까지 갖춘 손흥민은 최적의 조커였다. 손흥민은 대표팀에 안착했다. 경기력 뿐만이 아니라 선수들과도 잘 어울렸다. 특유의 긍정과 웃음이 큰 힘이었다. 그해 아시아축구연맹(AFC) 16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손흥민은 4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손흥민은 2008년 9월 대한축구협회의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 6기생으로 함부르크로 향했다. 송 강사 등이 추천했다. 독일에서 손흥민은 크게 성장했다. 경기력과 피지컬적인 측면에서 성장세가 남달랐다. 꾸준히 이광종호에도 들어왔다. 올 때마다 성장세가 보였다. 2009년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청소년(17세 이하)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17세 대표팀 시절 단체사진. 맨 윗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손흥민이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편지 한장

나이지리아에서 한국은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3대1로 승리했다. 손흥민은 1골을 넣었다. 하지만 2차전 이탈리아전에서는 1대2로 패했다. 슈팅수에서 17-13으로 압도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찬스를 놓쳤다. 손흥민이 특히 실수를 많이 했다. 손흥민은 당시 팀의 수장 이광종 감독에게 심하게 꾸지람을 들었다. 함께 공격에 나섰던 이종호(전남)도 함께였다. 둘은 모두 의기소침해졌다. 이 때 어린 두 소년의 마음을 어루만진 것이 바로 송 강사의 편지였다. 송 강사는 편지에서 '기죽지 말자. 이제까지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땀을 믿고 다시 한 번 나서자'고 했다. 송 강사는 "어린 소년들이었다. 감독님이 나무라면 수석코치였던 내가 보듬어주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며 편지를 쓴 이유를 밝혔다.

의외의 반응이 왔다. 손흥민과 이종호는 그날 밤 답장을 들고 왔다. "멋쩍게 들어오더니 '선생님, 여기요'하고 편지를 주고 나가더라. 편지에는 '제 마음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썼더라. 그걸 보면서 '아직 감성이 풍부한 소년들이구나'고 느꼈다"고 했다. 답장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이어 열린 알제리와의 3차전에서 2대0으로 승리했다. 손흥민과 이종호가 연속골을 넣었다. 16강에 올랐다. 한국은 8강까지 오르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때의 활약으로 손흥민은 함부르크와 정식 계약을 했다. 편지 한장의 힘은 놀라웠다.

너의 능력을 믿어라

나 감독이나 송 강사 모두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특별히 해줄 말은 없다고 했다. 그저 이제까지 해오던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 감독은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분명 잘해낼 것이다"고 격려했다.

송 강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믿었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주문했다. "분명 손흥민은 한국의 다른 공격수와는 다르다. 일대일이 되고 슈팅 능력도 뛰어나다. 월드컵에서는 과감하게 돌파해라.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너의 능력은 좋다. 자신감을 가지고 플레이해라. 누구도 널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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