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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낙마 이명주, 대기록으로 힐링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4-05-10 17:46 | 최종수정 2014-05-11 10:13


◇이명주가 10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펼쳐진 전남과의 2014년 K-리그 12라운드에서 전반 26분 선제골을 성공시킨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포항 스틸러스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월드컵은 모든 선수의 꿈이다. 실력 뿐만 아니라 운도 따라줘야 하는 무대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무대로 가는 길은 고된 싸움의 연속이다.

이명주(24·포항)는 월드컵을 두고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지난 1월 홍명보호의 브라질-미국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기대했던 활약은 없었다. 미국서 치른 3차례 A매치에 모두 나섰으나, 겉돌았을 뿐이다. 비난의 화살이 곧바로 이명주를 향했다. 소속팀인 포항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의 꿈은 허무하게 맺음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 차츰 쌓아올린 연속 공격포인트의 숫자가 늘어나자, 비난의 목소리는 기대로 바뀌었다. '이명주는 홍명보호와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는 '이명주를 반드시 데려가야 한다'는 응원으로 변해갔다. 절망에 빠졌던 이명주도 자신감을 찾으면서 다시 월드컵으로 가는 꿈을 꿨다.

거기까지였다. 홍명보 A대표팀 감독이 지난 8일 파주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발표한 브라질월드컵 본선 명단에 이명주의 이름은 없었다. 고심 또 고심했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명주는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걸 알고 있다. 좋은 선수라고 생각을 했다." 전술적 선택이었다. A대표팀의 터줏대감 기성용(선덜랜드)을 제외하면 이명주의 경쟁상대는 한국영(가시와) 하대성(서울) 박종우(광저우 부리)였다. 홍 감독은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적인 능력까지 갖춘 선수를 원했다. 포항에서 공격적인 움직임을 펼쳐온 이명주가 비집고 들어가기엔 한계가 있었다. 홍 감독은 "세 명 중에 한국영 밖에 수비 능력을 가진 선수가 없다"며 "한국영의 플레이가 어떤 영향을 끼칠 지 모르지만 옐로 카드에 대비해야 했기에 박종우를 선택했다. 이명주는 지난 1월 전지훈련에서 가능성을 보기 위해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요구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황선홍 포항 감독도 홍 감독의 선택을 이해했다. 그는 10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펼쳐진 전남과의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12라운드를 앞두고 "(이명주)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게 정답"이라며 "이명주가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신의 가치를 틀림없이 인정받을 것이다. 아주 끝난 게 아니다. 아직 월드컵까지 한 달이 남아있으니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아쉽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준비를 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응원했다. 그러면서 연속 공격포인트 신기록 작성에 대한 바람을 드러냈다. "대기록 도전에는 의지를 갖고 해야 한다. (이명주가) 좋은 선수인지 아닌지는 앞으로가 판단해줄 것이다.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해준다면 분명 큰 자질을 갖고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명주가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이명주는 전반 26분 선제골로 31년 역사를 가진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첫 10경기 연속 공격포인트의 대기록에 골인했다. 전남 페널티에어리어 내에서 고무열의 패스를 받아 수비수 두 명을 두고 시도한 왼발슛이 골키퍼 김병지의 손을 스쳐 그대로 득점으로 연결됐다. 뛰어난 활약에도 선택받지 못한 한을 날린 한 방이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의 기립박수 속에 이명주는 선수들이 태워준 무등을 타고 두 손을 펼친 채 환한 미소를 지었다. 후반 5분에는 전남 진영 오른쪽에서 얻은 코너킥 찬스에서 날카로운 오른발 크로스로 강수일의 추가골을 도왔다. 후반 추가시간에 김승대의 쐐기골까지 도왔다. 포항은 이명주의 원맨쇼에 힘입어 전남을 2대1로 제압하면서 클래식 전반기를 1위로 마감했다.

이명주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주변의 위로보다는) 스스로 가다듬는 게 중요하다." 그는 "1월 전지훈련 때는 좋은 컨디션도 아니었고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대표팀은 상이한 스타일의 선수들이 모이는 팀이다. 개인 실력이 우선 뛰어나야 한다. 아직 내 실력이 미흡하기 때문에 합류하지 못한 것 같다"며 "결과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빨리 수습하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팬과 동료, 코칭스태프 모두 응원해줘 이겨내고 좋은 결과까지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당히 만족스런 지난 1년이었다.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에 기뻤다. 노력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고 후회는 없음을 드러냈다.

비온 뒤 땅은 더 굳어진다. 월드컵을 향한 이명주의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포항=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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