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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 엔트리' 발표. 극심한 후폭풍이 따랐다. 축구팬 반응 속에서 인맥 이야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인신공격성 발언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열린 그 어떤 월드컵보다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느낌도 들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불만의 근원엔 홍명보 감독이 직접 언급한 '선수 선발 기준'이 있다.
고려할 요소도 있다. 한국영의 터프한 수비로 러시아-알제리-벨기에로 이어지는 3연전을 버틸 수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몸으로 부딪히는 도전적인 수비 형태는 경고 부담을 안고 있다. 앞선 두 경기에서 경고를 한 장씩 받는다면 벨기에전을 한국영 없이 싸울 수도 있다. 중앙으로 꺾어 들어오는 데 능한 아자르가 이 진영을 초토화할 경우 중앙 수비가 무너질 공산은 급격히 증가한다. 이 부분에서라면 런던 올림픽에서 재미를 봤던 박종우의 수비 능력에 한 번 더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여기에 홍 감독이 "기성용의 대체 자원"이라고 꼽은 하대성까지 있다. 즉, 이명주가 공격 본능을 마음껏 발휘할 만한 여건이 아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는 구자철과 김보경이 꿰찼다. 두 선수의 지난 시즌이 썩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다. 부상, 감독 교체 등 여러 문제가 덮쳤고, 경기 출장은 들쑥날쑥했다. 이를 대비해 이명주를 전진 배치해볼 기회가 1월 전지훈련 중에 있었다. 하지만 "(이명주에게)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요구했는데 선택을 받지 못했다."라는 홍 감독의 인터뷰를 봤을 때, 이미 이 카드는 선택지에서 빠져 있었다. 당시 전방은 김신욱과 이근호의 몫이었고, 이명주는 박종우와 짝을 이뤄 아래 진영에서 움직였다. 이러한 홍 감독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할 고유 권한이다. 해당 위치에 써본 적도 없는 선수를 월드컵에 데려가라고 강요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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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거창한 원칙을 내세워 온 건 아닐까. '원 팀, 원 스피릿, 원 골(One Team, One Spirit, One Goal)'을 주창한 홍 감독은 지난해 8월 "기본 원칙은 팀에서 경기를 나가지 않은 선수는 될 수 있으면 대표팀에 부르지 않을 생각이다."라며 자신을 옭아맸다. 이후 한 시즌 3경기 출장(선발 1경기)에 그친 박주영이 조기 귀국해 개인 훈련을 시작했고(선수의 능력 및 발탁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 K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로 발돋움하던 이명주는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 과정에서 2009 이집트 U-20 월드컵,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 런던 올림픽을 거친 '홍명보의 아이들' 중 몇몇은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공식 석상에서 입 밖에 낸 말을 스스로 번복했다. 깨질 수도 있었던 무리한 원칙을 제시했고, 이는 결국 '독'이 돼 돌아왔다. 특정 선수의 엔트리 제외가 극심한 반향을 몰고 온 지금, 홍 감독은 더욱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게 됐다. 어쩌면 이미 예견된 행보로 말이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