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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뜬다]'우쿨렐레 치는 남자' 배일환 이야기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3-11-21 14:15 | 최종수정 2013-11-22 08:39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제주도는 최고의 관광지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둘러쌓여있다. 하지만 처음보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젊은 선수들에게 제주도는 그리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육지에 비해 할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훈련 시간이 끝나면 대부분 휴식을 취한다. 기껏해야 영화를 보거나, 골프를 즐기는게 전부다. 다른 취미를 갖고 있는 선수도 있다. '우쿨렐레 치는 남자' 배일환(25·제주)이 그렇다.

배일환이 우쿨렐레를 시작한 계기도 '할일이 없어서'다. 무언가를 배우자고 결심한 순간, 예전에 본 책 내용이 생각났다. 배일환은 "인생에서 꼭 해야하는 몇가지 중 하나가 악기배우기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기타를 처음에 배우려고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쉬운 우쿨렐레를 택했다"고 했다. 스스로 말하듯 워낙 음악에 재능이 없던지라 우쿨렐라 배우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한번 시작한 이상 끝을 보고 싶었다. 학원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배웠다. 최근에는 잠잠해졌지만, 한참 불이 붙었을때는 틈만 나면 우쿨렐레를 잡았다. 점차 우쿨렐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항상 축구생각만 하니까 축구를 잊는 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예 다른 분야를 하다보니 축구생각도 안들고 좋더라. 집중력도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 동요 밖에 치지 못하던 배일환은 이제 '비와 당신' 같은 가요도 칠 수 있게 됐다. 친구들이 좀 친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정작 여자친구는 배일환이 우쿨렐레를 친다는 사실을 모른다. 배일환은 "말하면 보여달라고 할까봐 아예 말을 안했다. 쑥쓰럽지 않나"며 웃었다.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배일환의 별명은 '들소'다. 저돌적인 플레이로 제주 측면의 한자리를 꿰찼다. 플레이스타일 뿐만이 아니다. 우직한 모습으로 코칭스태프와 팬들의 신임을 얻었다. 2011년 제주에 입단한 배일환은 단 2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6년 홍 철, 한그루, 장석원과 함께 풍생고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2009년 U-리그에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던 그이기에 받은 충격은 컸다.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었다. 배일환은 "자신감이 너무 떨어졌다. 기존 선수들의 자리를 헤집고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뛰지 못하자 '내 모습이 이게 아닌데'하는 오기가 들더라. 혼자서 라이트 켜고 볼차며 웨이트에도 전념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스스로 기량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혹독한 훈련 뒤 배일환은 달라져 있었다. 박경훈 감독의 신뢰속에 출전시간을 늘려갔다. 지금은 제주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성장했다. 지난시즌에는 5골-2도움, 올시즌에는 2골-6도움을 기록했다.

그의 성실한 모습에 팬들도 늘어났다. 데뷔 500일에는 팬들이 직접 '일환 500'이라는 음료수를 제작하기도 했다. 유명 비타민 음료 라벨에 배일환의 플레이 사진과 제주 엠블럼을 합성해 정성스레 부착했다. 송진형 권순형 윤빛가람 등 꽃미남 선수들이 즐비한 제주에서도 밀리지 않는 인기인이다. 이번 빼빼로 데이에서도 가장 많은 과자를 받은 선수 중 하나다. 배일환은 "최근에는 축구에 전념하기 위해 SNS를 끊었다. 그래도 팬들이 지속적으로 선물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인기 비결에 대해 "매력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성실한 마음가짐을 높게 봐주시는 것 같다. 한결 같이 희생하는게 어필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배일환은 한단계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욕심이 많다보니까 항상 아쉽고 부족하다. 축구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이제 무게감을 더하고 싶다. 같은 포지션에서 뛰는 다른 팀의 에이스와 비교해 차이가 있지만, 갭은 많이 줄였다. 다음시즌에는 그 벽을 더 넘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라는 팀이 더 발전하는게 먼저라고 했다. 그라운드 내의 분위기메이커도 자처했다. 배일환은 "제주는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팀이다. 선수들끼리 마음이 잘 맞아야 한다. 더 좋은 팀이 되기 위해 중심이 되고 싶다"며 "나는 송진형 윤빛가람처럼 기술이 좋은 선수는 아니다. 대신 강하게 상대와 부딪히고, 몸을 날리는 것은 자신 있다. 동료를 웃기는 것만이 분위기메이커는 아니다. 경기장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내 역할이다"고 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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