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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어느 대학 팀과 고등학교 팀의 연습경기를 볼 기회가 있었다. 대학 팀엔 기량은 동 레벨에서 으뜸이나, 본인의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선수가 있었다. 이날도 주심이 볼 경합 과정에서 있었던 충돌을 봐주지 않자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볼이 아닌 상대 선수를 겨냥하는 나쁜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고, 점잖은 신사였던 감독은 불같이 화를 내며 이 선수를 곧장 빼버렸다. 그뿐만 아니다. 지금껏 만나본 지도자 중 축구 앞에서 소위 '건방을 떠는 선수'를 그대로 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피치 밖에서도 '사람이 먼저 될 것'을 강조했다. 오죽했으면 강원에 몸담았던 이을용의 좌우명이 '축구인이기 전에 사람이 먼저 돼라.'였을까.
그리고 한 달여 뒤인 3월 3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의 4라운드 경기. 이천수는 무려 1,300여 일 만에 K리그의 피치를 밟았다. 이 선수의 볼 터치 하나, 움직임 하나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눈길은 '사기 캐릭터'의 재림이 이뤄지느냐로 향했다. 이날 승점 3점은 역대 인천 원정에서 1무 9패로 처참히 무너졌던 대전의 몫이었고, 김인완 감독은 대전 부임 후 첫 승을 거뒀으나, 관심을 독차지한 건 단연 이천수였다. 이를 시작으로 5월 말 부산 원정에서는 복귀 후 첫 골을 신고하기도 했다. 교체될 때엔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고, 구단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는 모범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 좋았다.
최강희 감독이 그랬다. "난 이천수나 고종수와 같이 말썽 리는 선수들을 좋아한다. 스타 중에 평범한 선수는 없다."고 말이다. 이천수는 외모 대신 출중한 실력을 뽐냈고, (때로는 과하기도 했으나) 본인의 감정을 솔직히 어필할 줄 아는 보기 드문 운동선수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처럼 판에 박힌 인터뷰의 틀을 깨버린 이천수는 미디어가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일부 악질 보도로 과장되고 왜곡돼 내동댕이쳐질 때도 있었으나, 그는 스토리를 만들어낼 줄 아는 스타였다. 더욱이 운동장에 들어가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뛰었으니 팬들을 눈길을 마구 끌어당긴 건 당연지사였다.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했던 선수다.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