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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울산만 만나면 유독 작아졌다.
와신상담 황새vs철퇴의 여유
"말이 필요 있겠습니까." 울산전을 앞두고 만난 황선홍 포항 감독의 첫 마디였다. "내가 나가서 뛰고 싶을 정도다. 다 때려 눕히고 싶다." 농담에도 잔뜩 힘을 줬다. 울산전에 임하는 그의 다짐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포항은 울산과의 맞대결에서 특유의 패스를 앞세워 경기를 주도하고도 좀처럼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선굵은 울산의 '한방'에 내리 무너졌다. 황 감독은 한가위 휴식기 동안 송라클럽하우스에서 울산 공략법 연구에 절치부심했다. 그는 "(지난 맞대결에선) 많은 대비를 했지만, 상대 공격을 알고도 막지 못한 게 사실"이라면서 "상대는 이번에도 초반부터 포스트플레이를 앞세워 힘싸움을 하려 들 것이다. 그 때만 잘 넘기면 된다"고 강조했다.
빗나간 예상과 의외의 변수
전반 초반 분위기는 포항이 주도했다. 촘촘하게 짠 공간과 패스를 바탕으로 울산을 몰아 붙였다. 전반 12분과 17분에는 고무열이 득점과 다름없는 장면을 만들어내면서 분위기를 달궜다. 김신욱 하피냐 까이끼를 앞세운 울산이 밀렸다. 하지만 울산은 '한방'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반 35분 김성환이 올려준 크로스가 문전에 붙어있던 김신욱의 머리를 거쳐 하피냐의 오른발로 연결되면서 골망까지 굴러 들어갔다. 앞선 두 경기에서 나온 울산의 승리 방정식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황 감독은 "높이를 많이 이용하는 팀이기 때문에 분위기를 넘겨주면 견디고 찬스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이 뒤집어졌다. (초반) 찬스를 못 살린 게 아쉬웠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의 예상치 못한 변수는 바람이었다. 탁 트인 포항종합운동장은 아담한 스틸야드와 천지차이였다. 울산은 전반전 골키퍼 김승규의 킥이 하프라인을 넘지 못할 정도로 거세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포항을 상대했다. 포항도 직격탄을 맞았다. 전반 44분 터진 동점골로 다잡은 분위기가 후반전 몰아친 바람에 날아갔다.
김 감독은 "정상적인 경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바람을 안고 싸우다보니 먼저 실점하지 않고 득점을 한 게 다행이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황 감독은 "(거센 바람에) 나도 깜짝 놀랐다. 이 정도 바람이면 향후 승부의 변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기술보다는 힘싸움과 세컨볼에 집중해야 할 듯 하다"고 근심을 드러냈다.
무승부의 명암
90분 공방은 승점 1점을 나눠갖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명암은 엇갈렸다. 포항은 고개를 숙였고 울산은 웃었다. 포항은 승점 53으로 선두를 유지했다. '빛좋은 개살구'였다. 2위 울산(승점 52)과의 간격은 그대로다. 울산전 승리를 별렀던 황 감독의 아쉬움은 더했다. "한 번도 못 이긴 울산을 꺾지 못한 게 아쉽다." 그는 "울산을 상대로 선제골을 내주고 경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 심리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오늘 경기에서) 세컨볼 대비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실점한 게 아쉽다. 찬스를 못 살린 것도 뼈아프다"고 입맛을 다셨다. 한 경기를 덜 치른 포항과 간격을 유지한 울산에겐 승리와 다름 없는 무승부였다. 김 감독은 "원정에서 지지 않겠다는 선수들의 각오가 잘 통했다"고 칭찬했다.
포항=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