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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영화감독도 아닌데…."
불과 사흘 전 '서울 극장'이 열렸다. 10일 광주FC와 FA컵 16강전이었다. 전후반 90분 혈투는 득점없이 막을 내렸다. 연장전에 돌입했지만 1분 만에 선제골을 내줬다. 패색이 짙었다. 연장 후반 8분부터 극적인 역전 드라마가 상영됐다. 한태유가 동점골을 터트린 데 이어 8분 뒤 윤일록이 얻은 페널티킥을 몰리나가 결승골로 연결했다. 곧이어 종료 휘슬이 울렸고, 8강에 올랐다.
전남전, 분위기는 다른 듯 했다. 서울은 올시즌 클래식 원정에서 단 1승에 그쳤다. 후반 40분이 지나도록 좀처럼 골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거짓말 같은 '기적'이 다시 벌어졌다. 이번에는 '4분 드라마'였다. 후반 41분 김주영, 후반 45분 김진규가 각각 김치우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 골망을 흔들었다. 2대1,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서울 극장'이었다.
탁월한 용병술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
사흘 간격으로 열리는 살인적인 스케줄과 무더위, 치밀한 시나리오 없이는 버틸 재간이 없다. 설상가상 주포 데얀도 부상 중이다. '서울 극장'의 열쇠는 탁월한 용병술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다. 최 감독은 전남전에서 마지막 교체 카드로 최효진을 꺼내들었다. 대신 몰리나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몰리나를 빼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짧은 시간에 대변화가 일어났다. 최효진을 오른쪽 날개, 고요한을 중앙으로 돌렸다. 전원이 수비에 가담한 전남에 압박이 가중됐다. 하프타임과 후반 27분 각각 투입된 에스쿠데로와 이상협도 활력소였다.
절묘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두 차례 프리킥 찬스에서 승부를 뒤집었다. 후반 45분 프리킥은 직접 슈팅이 가능한 위치였다. 김치우의 자로잰 듯한 이타적인 프리킥이 절묘했다. 주장 하대성은 "감독님이 교체카드를 잘 쓴 것 같다. 교체로 들어온 선수들이 굉장히 힘이 됐다. 교체선수들이 더울 때는 두 발 더 뛰어주면서 해준다. 그들이 더 많이 뛰어주면서 공격의 활로를 열어줬다"고 했다.
'데몰리션'으로 집중된 화력은 사라졌다. 광주전에서는 한태유가 물꼬를 텄다. '서울 극장'은 예측할 수 없는 선수들의 골로 채워지고 있다. '축구는 후반 45분부터'라는 새로운 말을 탄생시켜도 될 것 같다.
최용수 감독은 죽을 맛
벤치에서 지켜보는 최 감독은 '죽을 맛'이다. 광주전 후에는 "머리를 잘 봐라. 흰머리가 많아졌다. 쉽게 이기는 경기가 없다. 내 입장에선 피하고 싶다. 영화는 진짜 극장에서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남전이 끝나고는 "지도자의 묘한 매력인 것 같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뒤집을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나도 편하게 지켜보고 싶은데…"라며 미소를 지었다.
김진규가 골을 터트리자 최 감독은 벤치의 몰리나, 아디와 함께 테크니컬 에어리어(경기 중에 감독이 팀을 지휘하는 벤치 앞 지역)를 벗어나 질주했다. 김진규가 동료들과 함께 환희를 나눈 오른쪽 코너 플래그 부근에서 함께 뒤엉켰다.
양복도 남아나지 않고 있다. 광주전에선 격하게 주저앉다 바지 가랑이가 '쫙' 찢어졌다. 다행히 속옷 색깔이 동색이어서 가까스로 '화'를 모면했다. 2년 전 전남전에서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아르마니 양복 바지가 찢어졌다. 무릎도 까졌다. 흰색 와이셔츠는 초록색으로 물들여졌다.
상위 스플릿 진입, 그들이 떨고 있다
서울이 상위 스플릿에 진입했다. 전남을 꺾고 2계단 도약했다. 승점 26점(7승5무6패)으로 7위에 올랐다. 올시즌 클래식은 26라운드 후 두 개의 리그로 분리된다. 1~7위가 그룹A, 8~14위가 그룹B에 포진한다.
클래식에서 하위권을 맴돌던 서울이 드디어 본격적인 순위 레이스에 가세했다. 1위 울산(승점 34)과의 승점 차는 불과 8점에 불과하다.
서울은 그동안 순위는 낮았지만, 전력은 우승권으로 평가받았다. 상위권팀들이 긴장모드다. '서울 극장', 클래식이 더 흥미로워졌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