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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깨운 페트코비치 감독의 '믿음'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3-06-24 10:23



"나는 훌륭한 감독이 아니다."

일리야 페트코비치 신임 경남FC 감독이 기자회견 도중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그는 동구권을 대표하는 명장 중 하나다.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본선행으로 이끌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의 코치직을 맡았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K-리그 클래식의 시도민구단보다 몇배나 큰 이름값이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낮췄다. 대신 선수들에 강한 믿음을 줬다. 경남이 마법에 걸린 비결이다.

경남이 달라졌다. 패배주의에서 깨어났다. 선수들의 눈빛은 살아났고, 경기력은 춤을 췄다. 경남은 23일 대전을 만나 6대0 대승을 거뒀다.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이 빛났다. 정교한 패스와 과감한 압박, 뛰어난 결정력까지. 사실 전술적으로 신임 감독이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그 팀이 감독의 색깔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최소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페트코비치 감독 역시 베스트11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진짜 마법은 '심리'에서 출발한다.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때부터 진짜 반전이 시작될 수 있다. 경남이 그랬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대표적인 '덕장'이다. 후덕한 인품으로 유명하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2010년 6월 암투병 중인 부인의 병간호를 위해 부득불 인천을 떠나는 과정에서도 월드컵 휴가 중인 선수들을 배려해 본인의 출국을 선수단에게 알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성품을 지녔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절대 선수를 꾸짖지 않고 경기 중 심판에게 절대 항의하지 않는 등의 확고한 지도 철학을 소유했다. 페트코비치 감독의 전매특허는 경남에서도 빛을 발했다.

두골을 터뜨린 김형범은 "감독님이 통역을 통해서 얘기하시는데 우리에게 100% 와닿지는 않지만 모션이나 제스처를 통해 우리를 얼마나 믿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승리의 원동력이다"고 설명했다. 전반기 부진에 허덕이던 김형범은 완전히 살아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기가 넘쳤다. 움추려있던 전반기와는 달랐다. 김형범은 페트코비치 감독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전반기에 안좋았다. 내 자신이 움추려 있었다.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고참임에도 위축돼 있었다. 오늘 경기 직전에 감독님이 따로 불러서 말씀해주신게 있다.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네가 보여줄 수 있는 것 다 보여줘라. 경기에 뛸 수 있는 유니폼 줬으니 다 보여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큰 책임감을 느꼈다. 믿음에 보담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페트코비치 감독도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호흡해야 선수들의 내면까지 볼 수 있다. 선수한테 용기를 북돋는만큼 강한 채찍을 날릴 수 있다. 개인 플레이하고, 마지막까지 안뛰고, 책임감 없는 플레이에 대해 지적했다. 이를 고쳐준 김형범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학교론'으로 축구를 비유했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외부에 거주하지 않고 함안 숙소에서 같이 선수들과 생활 중이다. 그는 선수들과 자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축구는 학교에 비유할 수 있다. 나는 선생이고, 선수들은 제자다. 당연히 함께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 운동장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다. 선수들이 축구를 모르는게 아니다. 내가 있는 이유는 이들의 기술적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선수를 믿는다" 페트코비치 감독의 믿음은 경남을 얼마나 더 강하게 할까.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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