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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스타가 떠난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였다. 베컴은 축구를 초월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축구를 여성의 관심사로 바꾸어놓았다.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패션과 외모 등에 관심이 많은 도시 남성)'의 대표 주자인 그는 아디다스와 같은 스포츠 브랜드뿐만 아니라 아르마니, 디젤, H&M 등 패션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큰 사랑을 받았다. 다양하고 대담한 베컴의 헤어 스타일도 늘 화제를 모았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팀 동료였던 호나우두(브라질)는 "베컴에겐 땀 냄새가 아니라 늘 향기가 났다"고 했다. 명성에는 부가 따르기 마련이다. 베컴은 지난해에도 5060만달러(565억원)를 벌어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쟁쟁한 현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축구선수로 자리했다.
베컴은 화려한 이미지만큼이나 화려한 플레이와 경력을 자랑한다. 그의 오른발은 잉글랜드의 자랑으로 불렀다. 베컴은 빠른 스피드와 돌파력은 없었지만, 정교한 오른발 킥으로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다. 특히 환상적인 프리킥은 그의 전매특허와도 같다. 타고난 발목 힘에 부단한 훈련으로 완성된 그의 프리킥은 초당 10회가 넘는 회전과 함께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골망을 갈랐다. 지난 2001년 10월 그리스와의 2002년 한-일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성공한 동점 프리킥은 그의 수많은 프리킥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베컴의 킥에 영감을 받아 <슈팅 라이크 베컴>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을 정도. 실력 뿐만 아니라 상품성까지 갖춘 베컴에게 수많은 빅클럽들이 러브콜을 보냈다. 베컴은 1993년 맨유(잉글랜드)에서 데뷔해 21년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LA갤럭시(미국), AC밀란(이탈리아), 파리생제르맹(프랑스) 등 각국 최고의 팀에서만 뛰었다. 최근 프랑스 리그1 우승컵을 포함해 모두 23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잉글랜드 선수로 4개국 리그에서 우승한 선수는 베컴뿐이다. 리그와 각종 컵대회를 합쳐 718경기에서 129골을 넣었고,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115경기에서 17골을 기록했다.
베컴의 축구인생이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다. 잘나가던 베컴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인생 최대의 실수를 범했다. '숙적'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에서 디에고 시메오네의 종아리를 걷어차며 퇴장을 당했다. 잉글랜드는 베컴의 공백속에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영국 언론은 베컴을 향해 "10명의 영웅들과 1명의 얼간이", "아르헨티나의 영혼을 가진 잉글랜드인" 등과 같은 혹평을 쏟아냈다. 영국인의 공공이 적이 된 베컴은 리그 경기 내내 야유를 받았고, 길을 가다가도 욕을 먹는 인물이 됐다. 그러나 베컴은 좌절하지 않았다. 베컴은 환상적인 활약으로 1998~1999시즌 맨유를 트레블(리그, FA컵, 유럽챔피언스리그 3관왕)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주장 완장을 차고 잉글랜드를 한-일월드컵으로 이끈 베컴은 '얼간이'에서 '영웅'으로 탈바꿈했다. 그리스전 이후 베컴은 "모든 잉글랜드 국민과 언론이 기립박수를 보내던 그 순간 끝이 보이지 않던 좌절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언제나 대표팀을 위해 헌신하고, 자선활동에 열심히 인 베컴은 이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축구선수다.
최고의 스타인만큼 은퇴 후 거취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컴은 일단 은퇴 후 행보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베컴의 마지막 소속팀인 파리생제르맹은 '은퇴하더라도 남아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홍보대사직을 수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맨유에 대한 애정을 계속해서 밝힌만큼 맨유의 홍보대사나 코칭스태프를 맡을 가능성도 있다.
베컴은 "세계 최고의 클럽에서 뛰는 영광을 경험했다.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100경기 이상 뛰었고 주장까지 경험한 일은 자랑스럽다. 판타지 같은 인생이었다"고 했다. 이어 "꿈 같은 일들을 현실로 이룬 난 행운아"라고 회상했다. 그의 화려한 인생은 그의 말대로 판타지와 같았다. 그러나 그가 이룬 성과는 행운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베컴은 '불가능은 없다'는 그가 출연한 광고문고처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베컴을 최고로 만든 것은 그의 잘생긴 얼굴이 아닌 땀에 젖은 유니폼이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