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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QPR행 '반전있는 남자' 윤석영 스토리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1-25 08:27


"하석주 감독님은 없는 선수로 생각하시겠다는데 막상 오퍼가 안들어오면 어떡하죠?"

시즌 직후 만난 윤석영(23·전남 드래곤즈)은 농반진반 걱정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겸손한 엄살이었다. 왼쪽 풀백으로 강력한 왼발킥을 장착한 윤석영은 작년 여름 런던올림픽 동메달 직후 주가가 폭등했다. 토트넘 맨시티 QPR 등 쏟아지는 영입설 속에 K-리그 잔류를 선택했다. 전남의 강등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다음 시즌 '해외진출'을 조건 삼았다.

24일 오후 전남 드래곤즈 구단이 공식 보도자료를 냈다. "윤석영이, 박지성이 뛰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퀸즈파크 레인저스(QPR)로 이적한다." '왼발의 달인' 윤석영이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동국, 김두현, 조원희, 이청용, 지동원, 박주영, 기성용에 이어 11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올림픽 동메달의 기적을 이룬 그곳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거짓말처럼 꿈이 이뤄졌다.

이적시장 초유의 숨가뿐 움직임이었다. 꿈을 이루는 데 걸린 시간은 만 하루였다. 2년 전 지동원 이적 당시 3~4개 구단이 경쟁하며 2개월 가까운 시일이 걸렸다. 전남은 영리한 '밀당(밀고 당기기)' 끝에 실리를 챙겼다. 일찌감치 뛰어들면 공연히 이적료만 올린다는 '지동원 학습효과'가 작용한 걸까. 20일 이후에야 윤석영을 향해, 침묵하던 유럽 이적시장의 입질이 시작됐다. 풀럼, QPR 등 프리미어리그쪽과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에서 구체적인 제안이 들어왔다. 전남은 23일 풀럼에서 온 입단테스트 제안을 거절했다. 제안서 수정을 요구했다. 전남은 "런던올림픽에서 검증된 국가대표 수비수에게 입단 테스트가 웬말이냐"며 발끈했다. 윤석영 역시 측근에게 "나를 간절히 원하는 팀으로 가길 원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23일 오후 전남 구단에 QPR의 공식 오퍼가 도착했다. 하룻만에 풀럼설이 QPR행으로 바뀌었다. "기회가 왔으니 도전해봐야죠." 구체적인 제안에 대한 윤석영의 의지는 확고했다. 팀이 강등권이라는 점을 잠시 고민했고, 복수의 제안들도 고려했지만, 마감이 임박한 이적시장에서 기회를 날릴 경우도 염두에 뒀다. 현명한 도전을 택했다.

전남의 고민 역시 길지 않았다. QPR은 바이아웃(70만 달러·약 7억5000만원)의 2배에 달하는 80만 파운드(약 13억5000만원·추정치)를 제시했다. 광양제철고 출신 '전남 유스' 윤석영은 2009년 우선지명으로 전남에 입단한 뒤 4시즌 동안 4골-10도움을 기록했다. 지난 7년간 윤석영의 든든한 둥지가 돼준 전남이 받게 될 훈련보상금은 54만 유로(약 7억7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도 선수도 '윈-윈'이었다. 쿨하게 보내기로 한 이상 더 욕심내지 않았다.

두달 가까이 고민하던 일이 하룻만에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속전속결이었다.

'대선배' 박지성과 한솥밥을 먹게 된 것도 꿈만 같다. 윤석영은 1990년생, 박지성은 1981년생이다. 대표팀에서 마주친 적은 없지만, '한일월드컵 키드'인 윤석영은 박지성을 보며 선수의 꿈을 키웠다. 지난 10월 방한한 토니 페르난데스 QPR 구단주가 "한국선수 1명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한 직후 윤석영이 거론됐다. 결국 그 QPR으로 가게 됐다.

태국 방콕에서 전남 선수단과 함께 전지훈련 중이던 윤석영은 24일 오후 영국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메디컬 테스트를 받은 직후 문제가 없을 경우 세부 계약조건을 확정하게 된다. 2~3년 계약이 유력하다.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선물한 영광의 무대, 언젠가 꼭 한번 밟고 싶었던 꿈의 무대에 마침내 첫발을 딛게 됐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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