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KB국민은행의 꼼수, 금융계 넘어 축구계까지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2-11-15 08:29


더 이상 고양KB국민은행의 모습을 축구계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사진은 올 시즌 내셔널리그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 기뻐하는 고양KB국민은행. 사진제공=한국실업축구연맹

역시 셈법에 있어서는 은행을 따라갈 곳이 없는 모양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은행이 끼어들면 가치 판단의 기준은 돈이 우선이다. 명분도, 사회공헌도 모두 돈 앞에서는 작아진다. 돈을 가지고 장사하는 은행들의 불편한 현실이다.

이 가운데 국민은행(은행장 민병덕)이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최근 국민은행의 서민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 대출이 구설에 올랐다. 서민들을 상대로 높은 금리와 수수료를 부과해 주머니를 털었다. 신용등급이 1등급인 대출자에게 연평균 12.7%의 고금리를 적용했다. 같은 조건의 다른 은행에 비해 5%이상 이율이 높다. 새희망홀씨 대출은 사정이 어려운 서민을 상대로한 신용대출이다. 취지가 무색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자들이 적격대출로 전환할 때 면제받아야할 중도상환수수료도 챙겼다. 논란이 일자 중도상환수수료를 뒤늦게 면제하는 촌극을 벌였다. 눈앞의 이익 앞에서는 서민들의 어려움도 나몰라라 하는 국민은행의 부도덕함이 드러난 대목이다.

금융계에서의 꼼수가 이번엔 축구계에서도 드러났다. 국민은행은 내셔널리그 축구단인 고양KB국민은행(이하 고양KB)을 가지고 있다. 1969년 창단한 고양KB는 한국실업축구를 이끌어온 팀이다. 1983년 프로축구 슈퍼리그 원년 멤버로 참여한 이력도 있다. 경제위기로 1997년 해체됐다가 3년 뒤 재창단했다. 2003년과 2004년, 2006년에 내셔널리그 정상에 올랐다. 지금은 사라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6번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올 시즌도 내셔널리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국내 실업축구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국민은행이 돌연 고양KB를 처분하기로 했다. 물론 정직하게 해체를 선언할 수는 없었다. 여론이 무서웠다. 이미 고양KB는 2006년 여론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당시 축구계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을 K-리그로 승격하기로 정했다. 하지만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한 고양KB는 승격을 거부했다. 금융법인은 비금융 관련 산업법인을 소유할 수 없다는 은행법을 이유로 들었다.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결국 고양KB는 다음 시즌 승점 20점 감점의 징계를 받았다.

이번에는 '기똥찬 방법'을 생각해냈다. 국민은행과 안양FC가 서로 통합을 놓고 논의중이다. 안양FC는 내년부터 출범하는 K-리그 2부리그에 참가한다. 19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사실상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선수단 떠넘기기다. 이우형 감독 등 선수단과 현재 국민은행이 보유한 물품 등 각종 자산이 안양FC로 넘어간다. 국민은행은 안양FC의 스폰서를 맡을 예정이다. 1년간 10억원 안팎으로 3년 계약이 유력하다.

국민은행만 유리한 '꼼수'다. 결국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국민은행이다. 그동안 국민은행은 돈은 돈대로 썼지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내셔널리그에서의 광고홍보효과는 크지 않다. 2006년 승격 거부 파동으로 욕만 먹었다. 이번 선수단 떠넘기기가 성사된다면 돈을 아낄 수 있다. 고양KB의 운영비는 연간 25억~30억원 수준이다. 선수단을 넘긴다면 비용부담은 연간 10억원 안팎으로 줄어든다. 스폰서 계약이 끝나는 3년 이후에 대해서는 기약이 없다. 3년간 30억원 안팎만 낸 뒤 골치아픈 축구판에서 손을 털겠다는 의미다. 축구계를 빠져나오면서 주는 일종의 '위로금'인 셈이다.

안양FC 입장에서는 경기력이 좋은 축구단과 행정 운영 노하우, 당분간의 운영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득보다는 실이 많다. 안양이 주목받는 것은 그들의 스토리 때문이다. 2004년 안양은 팀을 잃었다. 안양 LG가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이후 8년간 안양 축구팬들은 축구 없는 설움을 겪었다. 이번 안양FC 창단 과정에서도 시의회의 반대 등 어려움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축구단 창단에 성공했다. 안양시의 재정 지원과 각종 스폰서를 통해 팀을 꾸려나갈 생각이었다. 이 와중에 고양KB 선수단을 받아들였다. 새롭게 출범하는 안양FC가 아닌 안양KB나 다름없다. 연고지 이전으로 아픔을 겪었던 안양이 결과적으로는 다른 연고지에 있던 팀을 데리고 왔다. 안양FC가 가지고 있는 감동 스토리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자는 애꿎은 축구팬들이다. 고양KB의 팬들은 하루 아침에 사랑했던 팀을 잃었다. 안양FC 팬들 역시 자신의 팀이 아닌 다른 도시에 있던 팀으로 2부리그를 시작하게 됐다. 찜찜함을 금할 길이 없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지난 1일 창립 11주년을 맞이해 "금융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는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했다. 고객 중심 경영을 선언했다. 또 국민은행 광고에서는 '국민의 내일에 희망이 되고 꿈이 된다면 KB는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고양KB를 놓고 동원한 꼼수들을 보면 민 은행장과 국민은행 광고 문구를 믿을 수 있을지 의구심만 든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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