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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의 뒷물결은 앞물결을 밀어낸다. 새 사람은 옛 사람을 대신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결자해지해야 할 인물이 있다. 정치인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이다. 1993년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한 그는 16년간 한국축구를 이끌다 2009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4강 신화를 이뤘다. 그의 업적이다. 그는 지난해 1월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선거에서 낙선하며 축구에서 한 발짝 비켜섰다. 하지만 정 회장의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저자세 굴욕 이메일을 연출한 조중연 축구협회장과 김주성 사무총장은 바로 정 회장이 뿌린 씨앗이다. 조 회장은 전무와 부회장으로 십수년간 정 회장을 보좌하다 '축구 대권'을 잡았다. 정 회장의 물밑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총장은 '정몽준 장학생'이다. 2001년 기술위원으로 협회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정몽준 체제'에서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2004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 코스 연수까지 밟았다. 마스터 코스는 FIFA가 국제 스포츠 분야에서 최고의 교육을 제공할 목적으로 매년 세계 각국으로부터 25~30명의 인원을 선발해 운영하는 석사과정 코스다. 학비와 체류비 등 1년간 1억원이 넘는 예산이 소요된다. 김 사무총장은 2004년 최초로 협회 지원을 받아 이 코스를 이수했다. 국제 축구 인재의 등용문이지만 그는 내치와 외치에 모두 실패했다. 협회 내부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굴욕 이메일을 통해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추락시켰다.
축구협회 수뇌부는 지나가는 바람으로 치부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믿고 있다. 칼을 쥐고 있는 정 회장의 입장이 궁금하다.
시기도 미묘하다. 내년 1월 축구협회장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서는 정 회장이 축구에서 발을 뺄 가능성은 희박하다. 차기 협회장은 지방축구협회장 16명과 협회 산하 연맹 회장 8명 등 24명의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과반수의 표(13표)를 얻는 후보가 당선된다. 정 회장의 입김은 여전히 강하다. 프로연맹(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내셔널리그(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 여자연맹(오규상 현대미포조선 단장) 등이 그의 휘하에 있다. 조 회장이 아닌 새로운 인물을 후보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축구협회가 운영된다면 정 회장도 완전히 발을 빼야 한다. 한국 축구는 올림픽 동메달을 기점으로 새로운 10년을 설계해야 한다. 과거의 세력들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으면 미래는 없다. 퇴장할 때는 아름다워야 한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