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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소녀팬,K-리그 그라운드를 움직이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2-05-25 15:06



24일 오후 7시, 경기도 성남 분당구 하나로클럽 성남점에서 열린 성남 일화 '올림픽 삼총사'의 사인회는 소녀팬들로 넘쳐났다. 윤빛가람-홍 철-임종은 등 성남은 물론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이 환한 얼굴로 사인회에 나섰다. 수업을 마치고 달려온 교복 차림의 소녀팬, 지방에서 급상경한 여성팬, 평일 저녁 시장을 보던 아줌마팬 100여 명이 순식간에 늘어섰다.

원주에서 올라온 김수빈양(21·회사원)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K-리그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올시즌 성남 선수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4차례나 상경했다. 윤빛가람, 홍 철의 열혈팬이다. 주말마다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VIP석에서 선수들을 응원한다. VIP석을 찾는 이유는 좋아하는 선수들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다. 김 양의 축구사랑은 이내 친구들에게 전염됐다. '친구 따라 성남 온' 염윤주양(21·회사원)은 '꽃미남 센터백' 임종은의 팬이 됐다. "얼굴도 하얗고, 키도 크고, 완전 잘생겼어요. 뭣보다 축구를 잘하고요." 이들의 휴대폰 속 초기화면과 사진함 속엔 온통 성남 선수들 사진뿐이다.


경남FC 데뷔 시절부터 윤빛가람의 열혈팬이었다는 최수연양(22·학생)은 사인회 소식을 듣자마자 부산에서 고속버스로 올라왔다. 1박2일 일정으로 FA컵 수원시청전을 지켜본 이튿날 사인회 대열에 합류했다. "윤빛가람 선수 덕분에 K-리그가 좋아졌다"고 했다. 윤빛가람을 좋아하는 이유도 뚜렷하다. "가람 선수가 K-리그 안본다고 논란이 된 적이 있잖아요. 저는 오히려 그런 솔직하고 강단있는 모습이 좋았어요." 화성에 사는 이의양양(18·매향여자정보고)은 윤빛가람의 3년차 팬이다. 30분 가까이 기다려 매일 입는 교복에 사인을 받은 후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라운드 소녀팬들을 향한 각 구단의 구애도 이어지고 있다. 부산 아이파크는 28일 오후 3시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전남과의 홈경기를 '레이디스데이(Lady's day)'로 정했다. '부산 아이돌파크'라는 애칭에 걸맞게 임상협, 한지호, 박종우, 이범영 등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훈남 선수들이 넘쳐난다. 가장 눈에 띄는 이벤트는 '에스코트 레이디'다. 경기 시작 직전 선수들과 손을 잡고 그라운드에 입장한다. 기존 어린이 대상 행사를 '여성팬'을 위한 특별 이벤트로 바꿨다. 선착순 22명만이 선택되는 '좁은 문'인 만큼 벌써부터 여성팬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임상협 등 '꽃미남'을 선점(?)하기 위한 현장 눈치작전 역시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 여성팬에게 선수들이 직접 장미꽃도 전달한다. '에스코트 레이디' 티켓가격은 각각 50% 인상된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9000원으로 책정됐다. 기꺼이 지갑을 열겠다는 여성팬들이 줄을 섰다. 올시즌 전북 현대는 이미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선수들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그린걸스' 프로그램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인천은 지난 16일 부산전에서 여성팬들에게 50% 할인 혜택과 함께 뷰티제품 등을 증정하는 '엔젤스데이'를 진행해 호평받았다.

K-리그 그라운드에 여심을 잡기 위한 이벤트가 쏟아지고 있다. 일회성 이벤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체계화된 마케팅이다. 취재 결과 16개구단 가운데 유료 관중을 성별, 연령별로 분석해 마케팅에 적용하는 구단은 FC서울이 유일했다. 실관중 가운데 소녀팬, 여성팬들의 비중이 얼마만큼인지, 얼마나 늘고 얼마나 줄었는지, 어떤 자리를 선호하는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인지, 취향은 어떤지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데이터를 통해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K-리그 흥행에 있어 소녀팬의 몫은 절대적이다. 최근 역대 최소경기 200만 관중을 돌파한 프로야구의 흥행 역시 여성팬이 주도하는 '데이트족'들의 힘이 컸다. 소녀팬들은 힘이 세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전염성이다. 성향상 나홀로 축구장을 찾는 소녀팬은 거의 없다. 친구들과 함께, 혹은 남자친구, 가족과 함께 삼삼오오 축구장을 찾는다. 소녀팬의 입소문 마케팅은 그 어떤 수단보다 강력하다. 또하나의 무기는 적극성과 충성도다. 온-오프라인에서 선수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한번 좋아한 선수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충성도를 나타낸다. 선수도, 구단도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날 성남의 사인회에서 한 소녀팬이 임종은의 팔에 실팔찌를 직접 묶어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실팔찌가 끊어질 때 소원이 이뤄진다고 하더라고요." 소녀팬의 진심에 선수의 마음도 움직였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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