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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천재' 라돈치치, 찬스는 두 번이면 족했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2-03-11 16:04


◇'게으른 천재' 라돈치치(오른쪽)는 부산전에서 실망스런 모습에 그쳤지만, 10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인천전에서는 감각적인 왼발골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라돈치치가 득점 후 서정진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라돈치치(29·수원 삼성)의 별명은 '게으른 천재'다.

탁월한 신체 조건과 뛰어난 기량에는 이견이 없다. 성격도 시원시원한 편이다. 대개 용병들이 K-리그에서 뛰는 기간은 길어도 2년 정도다. 그러나 라돈치치는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를 통해 처음 K-리그를 밟은 뒤 현재까지 8년 동안 한국에 머물고 있다. 귀화 후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 대한축구협회까지 나서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을 드러낼 만큼 인정을 받는 공격수다. 그러나 불성실한 태도가 '옥에 티'였다. 2005년 인천의 K-리그 준우승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에서 훈련 중 동료들이 골대를 나르는 상황에서 건성으로 이를 거들다 수비수 임중용(은퇴)과 시비가 붙는 장면이 그를 말하는 대표적 장면이었다. 성남 시절에도 신태용 감독에게 태도 문제로 자주 구박을 받았다. 2010년 성남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출전, 2011년 FA컵 우승 등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늘 2% 부족한 평가를 받아왔다. 라돈치치가 수원 유니폼을 입는다는 소식에 우려의 눈길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윤성효 수원 감독은 기대가 컸다. 라돈치치를 패스축구의 핵심으로 쓰겠다고 했다. "볼 간수(키핑)가 되는 선수다. 우리 미드필더들이 공격라인으로 진출하는데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2011년 알 사드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난투극으로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스테보가 돌아오면 쌍포 역할을 제대로 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2년 K-리그가 뚜껑을 열자 윤 감독의 이런 구상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 했다. 라돈치치는 부산 아이파크전에서 굼뜬 움직임으로 실망감만 안겼다. 중원에서 찔러주는 패스를 잡으려 달려가다 이내 포기하는게 부지기수였다. 수비수와 경합 과정에서 투쟁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라운드에 풀썩 쓰러지며 심판만 바라볼 뿐이었다. 라돈치치 때문에 수원의 전체적인 공격 속도가 느려지는 모습마저 드러냈다. 라돈치치가 제 역할만 해줬으면 쉽게 갈 수도 있었던 경기였다. 윤 감독도 "공격진의 움직임이 부족하다"고 입맛을 다셨다. 라돈치치는 그렇게 또 다시 천덕꾸러기가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천재는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거추장스런 몸짓은 하지 않는다. 한 번의 찬스에서 매 같은 집중력을 선보이면 그만이다. 라돈치치의 진가는 10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과의 2012년 K-리그 2라운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전반 29분 오범석이 페널티에어리어 오른쪽 측면에서 낮게 올려준 크로스를 수비와 경합 과정에도 불구하고 왼발 논스톱슛으로 연결, 골망을 갈랐다. 후반 33분에는 문전 쇄도로 페널티킥을 얻어낸 뒤 직접 추가골까지 성공시켜 전용경기장 개장경기 승리를 바랐던 친정팀 인천을 울렸다. 경기 초반 라돈치치의 실망스런 움직임에 굳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던 윤 감독은 두 번째 골을 터뜨린 뒤 벤치로 달려온 라돈치치를 끌어 안으며 활짝 웃었다.

인천을 2대0으로 완파한 수원은 리그 2연승을 달렸다.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첫 경기서 1대3으로 패했던 인천은 2연패가 됐다.
인천=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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