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의 비이성적인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축구협회는 8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조 감독의 경질을 발표했다. 참석하기로 한 조중연 축구협회장은 불참했다. 대신 김진국 축구협회 전무가 황보관 기술위원장과 기자회견을 함께했다. 김 전무는 조 회장이 참석하지 않은 데 대해 "전례를 봐서도 (대표팀 감독 문제)는 기술위원장의 몫이다. 절차상 맞지 않다. 기술 관련 부분은 과거에도 그렇고 위원장이 발표를 한다"고 했다.
이율배반이었다. 설명을 그렇게 했으면 감독 경질의 경우 기술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의사결정 구조는 밀실 야합으로 이뤄졌다.
축구협회 정관은 무용지물이 됐다. 정관에 따르면 기술위원회는 각급 대표팀과 선발팀, 상비군 등을 이끌 지도자를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또 대표팀을 포상하거나 징계하는 데 협조하고 근거 자료를 제공토록 하고 있다.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평가도 포함돼 있다.
축구협회는 산하에 기술위원회를 두고 있다. 기술위원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10명 안팎의 위원들이 포진한다. 위원장이 지난달 교체됐다. 황보 위원장이 이회택 부회장의 바통을 넘겨 받았다. 산하 위원장 중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철학은 없었다. 답변은 오락가락했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짜맞추기'식으로 말을 하다 자가당착에 빠졌다. 황보 위원장은 "신임 기술위원을 발표 안했지만 비공식적으로 모임을 했다. 이 문제를 다뤘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는 "신임 기술위원들도 이 내용을 잘 모른다. 내가 행정적인 지원을 통해 회장단과 함께 이 결정을 내렸다"며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김 전무는 또 달랐다. 그는 "정관상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시기적으로 기술위원장이 선임된 직후고 너무 촉박했다. 하지만 기술위의 결정에도 최종적으로 회장이 재가를 내린다. 작은 절차는 거치지 않았지만 큰 절차는 제대로 했다"며 절차상의 하자를 시인했다.
더 큰 문제도 세상에 나왔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조 감독이 경질된 실질적인 배경이다. 자본이 대표팀 감독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됐다. 중계권료를 지분하는 방송사와 축구협회를 지원하는 스폰서다. 방송국은 한 경기 평균 7~10억원을 지불하고 중계권을 산다. 대표팀이 인기가 시들하면 광고가 붙지 않는다. 적자 중계를 할 수밖에 없다.
4년마다 열리는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에 탈락하면 손실은 막대하다. 허정무 전 A대표팀 감독도 최종예선 과정에서 부진하자 한 방송국이 흔들어 문제가 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조 감독의 경질도 연장 선상이다. 한 방송사가 불을 질렀는데, 사전에 축구협회와 교감을 나눴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스폰서도 마찬가지다. 축구협회의 올해 예산은 1031억2352만원이다. 협회 자체 수입은 582억원인데 이 가운데 후원사에서 거둬들이는 돈은 214억원(후원금 180억원, 현물(용품) 수입 34억원)이나 된다. 전체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진출에 실패한다면 타격을 피할 수 없다.
황보 위원장은 "축구에서 스폰서는 아주 중요하다. 그런 부분(감독 경질)에서도 이야기가 계속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다. 빨리 변화(감독 교체)를 주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고려가 있었다"고 해 논란이 되고 있다.
복잡한 축구계의 정치적 문제도 얽혀있다. 이면에 정몽준 명예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조 감독은 '야당 인사'다. 축구협회의 대항마인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65)과 가깝다. 허 회장은 두 차례 대한축구협회장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2009년 1월 조중연 후보와 협회장 선거에서 맞대결한 결과 8표차로 졌다.
내년 연말이 되면 축구계도 선거 정국이다. 2013년 1월 협회장 선거가 있다. 조 감독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스포츠조선은 허 회장과의 인터뷰를 7일 오후 보도했다. 허 회장은 정 회장을 포함한 현 집행부에 대립각을 세웠다. 축구협회는 공교롭게 이날 퇴출을 결정했다. 한 축구인은 "스포츠조선의 보도 직후 축구협회 수뇌부는 물론 정 회장도 발끈했다. 보이지 않는 힘은 정 회장측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현 축구협회 집행부는 부당한 압력에 굴복했다.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