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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기자석]태극마크를 우습게 보지 마라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1-10-13 15:10


57년 전의 일이다. 1954년 3월, 한국전쟁의 상흔이 생생할 때였으나 일제치하는 더 잊을 수 없었다. 한-일전이 처음 그려졌다. 한국은 일본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 원정에 나섰다. 스위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이었다. 이유형 당시 A대표팀 감독은 출정식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일본에 지면 선수단 모두 현해탄(대한해협을 의미)에 몸을 던지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홈이점을 포기한 악조건이었다. 1차전 5대1 대승에 이어 2차전에서 2대2로 비기며 사상 첫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1970년대 초반 A대표팀의 국내 합숙훈련 때는 7~8명이 짝을 이뤄 여관방에서 기거했다. 해외 원정길에는 통조림을 공수, 끼니를 해결했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품은 정신은 특별했다. 명예와 영광, 자존심이 영혼을 지배했다.

세월이 흘렀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환경은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 A대표 선수들은 해외 원정시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한다. 가격이 일반석(이코노미 클래스)의 두 배다. 파주NFC(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선 1인 1실, 해외에선 특급호텔의 2인 1실이 기준이다. 경기력을 위한 최대한의 지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 뿐인 것 같다. 태극마크다. 더 단단해져야 할 정신은 점점 퇴색돼 가고 있다.

주연만 있을 뿐 조연은 없다. 명예를 바라는 것은 사치다. 손흥민(19·함부르크) 아버지 손웅정 춘천FC감독의 그릇된 부정이 현주소다.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그는 축구인이다. 12일 기자들을 앞에 두고 '쇼'를 했다. 인터뷰 전 박태하 A대표팀 수석코치와의 통화 내용이 여과없이 생중계됐다. 하필 기자들이 모인 공항 출국장일까. 의문은 남지만 요지는 그랬다. "아직 실력이 안되니 뽑지 말아달라"고 한 후 본론을 얘기했다. "전반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공격의 변화를 줄 상황이었는데 왜 흥민이를 투입하지 않았느냐. 높으신 분들이 그것도 판단이 안되느냐." 분을 참지 못했다. 간간이 육두문자도 들렸다.

손흥민은 조광래호의 수혜자 중 한 명이다. 아시안컵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했다. 최종엔트리에 승선한 그는 4경기에 출전, 1골을 터트렸다. '살인 미소'에 소녀팬들의 사랑도 뜨거웠다. 출전시간이 적다고 해서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정면충돌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어떤 조직이든 질서가 있다. A대표팀의 선장은 사령탑이다. 감독이 모든 책임을 지며 선수 선발과 전술, 전략을 짜는 것 또한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손흥민 뿐이 아니다. 경기에 뛰지 못하는 국내파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 베스트 11에 뽑히느냐, 안 뽑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정점에 태극마크가 있지만 한 배를 탄 동료의식은 희미해지고 있다.

사실 A대표 선수들은 경기에 뛰든 못 뛰든 선택받은 자들이다. 2만4000여명의 초중고생들이 대한축구협회에 선수로 등록돼 있다. 이들의 꿈은 하나다.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다.

차두리(31·셀틱)는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의미있는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는 부상으로 승선이 불발됐다. 손웅정씨의 발언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축구선수에게 대표팀에 뽑히는 것은 선수 생활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일 중 하나다. 대표선수는 그 나라를 대표하고 가장 축구 실력을 인정받아 뽑히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자리다. 베컴은 벤치에 앉아도 좋으니 대표팀에만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렇다. 태극마크는 고귀하다.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다.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단, 의무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뒤에는 온 국민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바로 선배들이 품었던 태극마크의 정신이다.
스포츠2팀기자·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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