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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열기를 더해가는 러시아월드컵. 경기 외적으로 덩달아 뜨거워지는 논란 거리가 있다. VAR(비디오판독시스템)이다.
26일(한국시각) 펼쳐진 포르투갈-이란의 B조 최종전에서도 VAR 논란이 일어나는 등 거의 매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논란의 요지는 '통계상 특정 대륙에 유리하다', '적용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모호하다', '결국 인간(심판)의 판단에 달렸다'는 등의 비판이다.
이런 현상은 국내 K리그 축구팬들에겐 익숙하다. VAR 경험으로 보면 월드컵보다 K리그가 선배 격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FIFA 규정에 따른 VAR을 도입한 K리그는 지금 러시아월드컵이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진통을 겪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올시즌에는 점차 개선된 VAR 제도를 정착시켜 가는 중이다. VAR로 인해 야기된 논란은 세계 최고의 축구축제 월드컵이라 해서 별반 다를 게 없던 셈이다.
한국도 VAR 적용의 객관성과 관련해 피해를 입었다. 지난 24일 멕시코와의 2차전 후반 21분 에르난데스에게 0-2 골을 내주기 직전 기성용이 파울을 당한 상황 때문이다. 기성용이 하프라인 인근에서 공격 전개를 하던 중 에레라의 발에 차여 넘어지면서 공을 빼앗겼고, 곧바로 멕시코의 역습으로 이어지며 실점이 됐다. 주심은 기성용이 당한 상황을 멕시코의 파울로 선언하지 않았다.
VAR 선배인 K리그에서 이 상황이 발생했으면 어땠을까.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멕시코의 득점 취소가 맞다"고 단언했다. 연맹은 작년 7월 1일 2017시즌 K리그 18라운드 울산-수원전에서 일어난 똑같은 사례를 들었다. 후반 17분 울산 이종호가 추가골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울산 진영 좌중간에서 김종우가 김민우(당시 수원)의 측면 패스를 받는 순간 한승규 태클에 걸려 넘어지면서 공을 빼앗겼다. 곧바로 울산의 역습이 이어졌고 김승준의 측면 크로스에 이은 이종호의 헤딩골이 터졌다. 하지만 VAR 통제실의 무전을 받은 주심은 '사각형 수신호'를 했고 6분 동안 분석한 끝에 '골 취소'를 선언했다.
연맹 관계자는 "기성용의 피파울 장면을 여러번 확인했는데 울산-수원전과 똑같았다. 그라운드 심판들이 미처 못봤다 하더라도 통제실의 무전을 받고 VAR을 거쳐 골을 취소하는 게 맞다"면서 "FIFA의 VAR 프로토콜(적용규칙)에도 파울 후 역습 전개 과정에서 상대 선수에게 한 번 차단됐다가 다시 빼앗아 골로 연결했다면 다를 수 있지만 연속 전개된 플레이 끝에 골이 됐다면 거슬러 올라가 파울 상황을 (골의 시작으로) 판단해 취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한국-멕시코전 심판진은 VAR을 하지도 않았다. 연맹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첫 번째는 이른바 'VAR 패싱'으로 심판과 통제실이 놓쳤을 경우다. 그러나 이 경우의 발생 확률은 0%에 가깝다. "VAR 보조심판은 기기 작동 등 집중교육을 받는다. 월드컵이면 더 철저했을 것이다. 통제실에서 그 장면을 돌려보고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게 연맹의 설명이다.
두 번째는 주심과 VAR 보조심판 모두 파울로 인식하지 않았을 경우다. 통제실에서 사인을 보냈는 데도 주심의 성향에 따라 묵살했을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연맹은 "최근 K리그 주장단 회의에서 퇴장 장면 영상을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더니 경고-퇴장으로 갈리더라. 심판들도 보는 눈이 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필이면 휘슬에 극도로 인색한 심판들이 한국-멕시코전에 배정된 것일까, 아니면 거의 일어날 확률이 희박한 'VAR 패싱'에 당한 것일까. 어쨌든 한국은 이날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