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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한 편의 영화를 장악하는 힘이 압도적이다 못해 살벌하다.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 또 섬뜩했다 분노하게 만드는 천의 얼굴들. 충무로가 낳고 대한민국이 키운 국보급 배우들이 올해 청룡 무대에서 자웅을 겨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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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한계 없는 연기 변신으로 한해 극장가 관객을 사로잡은 도경수, 류준열, 송강호, 유해진, 이병헌이 메소드 연기의 진수로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한국 우주 SF 장르의 진일보를 연 '더 문',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경수가 있었다. 보이그룹 엑소로 데뷔했고 이후 2014년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영화 '카트'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도경수는 어느덧 연기 구력 9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배우로 성장했다. 특히 올해 '더 문'에서는 달에 발을 디딘 첫 대한민국 우주 대원 황선우로 변신해 새로운 얼굴을 보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우리호에 막내 대원으로 탑승해 달로 떠났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로 까마득한 우주에 고립된 인물을 연기한 도경수. 지구에서 38.4만km 떨어진 달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우주 대원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전달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인정한 대배우 송강호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자리를 꿰찼다. 블랙 코미디 영화 '거미집'에서 악조건 속에서도 기필코 걸작을 만들고 싶은 거미집의 감독 김열 그 자체가 된 송강호는 데뷔 이래 첫 감독 캐릭터를 맡으며 변신의 귀재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회의와 자학, 열정과 재능, 자본의 논리 등과 부딪히는 욕망들 속에서도 걸작을 완성하겠다는 뚝심의 연출자로 변신해 다시 한번 인생작을 경신했다.
코미디는 물론 휴먼, 액션, 스릴러에 로맨스까지 손에 쥔 장르마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야 마는 팔색조 유해진. 올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네 번째 후보로 다시 한번 빛을 냈다. 유해진은 데뷔 26년 만에 도전한 첫 로코 '달짝지근해: 7510'을 통해 새로운 '멜로킹'으로 등극한 것. 자신이 정한 계획안에서 1초의 오차도 없이 맞춰 살아가는 극내향인 남자 치호를 연기한 유해진은 믿고 보는 코미디 센스와 동시에 러블리한 로맨스 주인공으로 신선한 매력을 과시했다.
'눈알을 갈아 끼운 연기력'이라는 극찬이 자자했던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이병헌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빠지지 않았다. 한국 재난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황궁 아파트 주민대표 영탁으로 파격 변신한 이병헌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로 여름 극장을 뒤흔들었다. 친근한 이웃의 소탈한 웃음을 보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섬뜩한 광기를 내보인 이병헌은 스크린을 장악하는 빈틈없는 연기의 정수를 보이며 관객을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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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2023년. 김서형, 김혜수, 박보영, 염정아, 정유미까지 따뜻한 포용력을 바탕으로 특유의 리더십과 카리스마, 그리고 광기의 열연까지 소화하며 극장가를 장악했다.
올해 가장 강렬한 독립영화, 그리고 배우로 급부상한 '비닐하우스'의 김서형. 제43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제4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제32회 부일영화상, 제59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독식한 김서형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로도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시각장애인 태강(양재성)과 치매를 앓고 있는 화옥(신연숙) 부부의 간병인으로 일하며 아들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는 게 꿈인 문정을 소화한 김서형은 최악의 선택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선을 완벽히 표현했다.
퀸은 영원하다. 매 작품 인생캐를 완성하는 '청룡 여신' 김혜수도 범죄 영화 '밀수'로 여성 영화의 파워를 과시했다. '밀수'에서 밀수판에 뛰어든 조춘자를 연기한 김혜수는 '역시 김혜수'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킬 비주얼과 열연으로 여름 극장을 시원하고 짜릿하게 흔들었다. 마치 김혜수를 본떠 만든 듯한 조춘자는 김혜수의 모든 매력을 집대성한 캐릭터로 '밀수' 속 존재감을 드러냈다. 때로는 단호한 카리스마를, 때로는 물 흐르듯 유연한 연기로 '밀수'의 중심을 담당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황도 커플로 많은 사랑을 받은 명화 역의 박보영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경쟁을 펼치게 됐다. 모든 것이 무너진 현실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으려는 명화를 소화한 박보영은 작은 체구와 정반대의 강단 있는 눈빛과 표정으로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만의 기준을 잃지 않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따스한 마음과 배려,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심지를 박보영만의 매력으로 구축, 한층 성숙한 면모로 캐릭터를 관객에게 각인시켰다.
김혜수와 함께 '밀수'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활약한 염정아 역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박빙 경합을 예고했다. 평생 물질만 하다 밀수판에 가담한 해녀들의 리더 엄진숙으로 여름 극장가를 책임졌던 염정아. 살기 위해 밀수판에 가담한 해녀들의 리더로 변신한 염정아는 특유의 깊이 있는 내면 연기는 물론 '밀수'의 모든 캐릭터를 아우르는 걸크러쉬 매력까지 자아내며 대중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았다. '밀수'의 염정아는 김혜수와 함께 워맨스의 정석을 보이며 여성 연대의 힘을 입증했다.
사랑스러움의 의인화였던 '윰블리' 정유미의 섬뜩한 광기 열연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강력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공포 영화 '잠'에서 남편 현수(이선균)의 몽유병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아내 수진을 연기한 정유미는 기존의 러블리한 매력을 잠시 내려놓고 공포에 잠식되어 가는 현실적인 인물로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맞닥뜨린 모습으로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 공포의 비밀과 정면으로 맞서는 광기의 모습까지. '윰블리'가 아닌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정유미로 반전 매력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